지난해 6월 오인자(가명·70) 씨는 경기도의 한 병원에서 간암 3기 판정을 받고 서울성모병원 간암센터로 실려 갔다. 자기공명영상(MRI)에 찍힌 간암 세포의 크기는 10cm가 넘었고 정상 세포와의 경계선도 뚜렷하지 않았다. 집 주변 병원 세 곳에선 이미 ‘치료 불가’ 진단을 받았다.
오 씨는 서울성모병원에서 마지막 구명(救命) 수단으로 방사선동위원소 치료를 택했다. 이 병원 간암센터 치료팀은 우선 간암 세포에 영양을 공급하는 동맥을 찾아 항암제를 투여하는 방식(색전술)으로 암세포 크기를 줄여나갔다.
두 번의 색전술에 성공한 치료팀은 이번에는 암세포와 연결된 혈관에다 이트리움-90이라는 방사선동위원소를 집어넣었다. 반감기가 3일 이내인 이트리움은 혈관을 타고 들어가 암 덩어리만 파괴하고 몸속에서 소멸됐다.
동위원소 치료가 끝나자 암세포 덩어리는 2cm로 줄었고 경계도 분명해졌다. 끝까지 살아남은 암세포는 수술로 잘라냈다. 오 씨는 지난해 12월 치료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트리움을 이용한 치료법은 간암센터가 2009년부터 도입한 의술. 이 같은 최신 의술로 치료팀의 간암 완치율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 다양한 치료 방식의 조합
간은 ‘침묵의 장기’로 불린다. 90%가 망가져도 환자가 자각증세를 느끼지 못할 때가 많다. 병원에서 간암 판정을 받는 환자의 80%가량은 암세포가 이미 상당히 퍼져 절제수술만으로는 완치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다.
소화기내과 간담췌외과 인터벤션영상의학과 방사선종양학과 교수들로 구성된 서울성모병원 간암센터 치료팀은 다양한 치료 방식을 조합해 환자의 간암 극복을 돕는다.
치료팀은 간암의 진행 정도, 간 기능, 환자의 몸 상태를 보고 치료법을 선택한다. 보통 젊은 환자의 암세포가 3cm 이하로 하나만 있으면 절제수술로 치료를 끝낸다. 하지만 치료팀을 찾는 환자 중 수술이 가능한 환자는 20%에 불과하다.
종양이 두 개 이상이거나 간 기능이 나빠 절제수술 이후 남아 있는 간으로 살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환자는 수술 대신 다른 치료법을 우선 적용한다.
지난해 3월 치료팀을 찾은 윤승무(가명·58) 씨는 말기 간암 판정을 받았다. 간암 세포의 크기는 16cm로 다른 병원에선 “수술해도 6개월을 연명하기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치료팀은 윤 씨의 대퇴부에 작은 구멍을 내고 지름 1mm인 가느다란 관으로 간동맥에 연결했다. 이렇게 연결된 관에다 항암제를 한 달에 한 번씩 11개월간 투입한 결과 암세포 크기가 4cm로 줄었다. 윤 씨의 간에 남아 있는 암세포는 방사선으로 치료할 계획이다.
윤 씨보다 상태가 더 좋지 않은 간암 환자에게는 항암제를 더 적게 투입하는 수술법을 쓴다. 만성 간염으로 복수가 차거나 황달에 걸린 환자들이 항암제 독성과 내성을 피하기 위한 방법이다. 항암제 1회 투여량은 줄이지만 투입 횟수는 주 1회로 늘어난다.
치료팀을 이끌고 있는 윤승규 교수(센터장)는 “가랑비에 옷을 적시게 하는 치료법”이라고 소개했다. 치료팀이 환자 30명을 대상으로 이 같은 치료법을 적용한 결과 증상 억제율이 40% 이상으로 나왔다.
○ 초기 간암 환자 생존율 증가
간암은 다른 암과 마찬가지로 진단이 빠르고 정확하면 완치율도 높아진다. 치료팀은 진단에서부터 협진으로 진행한다. 치료팀은 “최신 영상진단 기법으로 2cm 이하 간암의 90% 이상을 잡아낸다”며 “1cm 이하의 간암도 조기 진단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간암세포를 찾아내기 위해 치료팀은 컴퓨터단층촬영(CT)을 사용할 때 조영제를 투여하거나 해상도가 높은 MRI를 이용한다.
치료 방식도 협진에 의해 정해진다. 배시현 교수(소화기내과)는 “진단이 끝나면 각과 전문의들이 자유롭게 소견을 말하며 최적의 치료법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치료팀이 최근 3년간 간암수술 실적을 집계한 결과 절제수술을 받은 초기 간암 환자들의 3년 생존율이 85%로 나타났다. 배 교수는 “미국의 어느 병원과 비교해도 월등한 실적”이라고 설명했다.
○ 환자 맞춤형을 지향하는 서비스
윤 교수는 “수술에 들어가기 전에 협진에 참여하는 진료팀이 모두 병동 벽에 붙어 있는 문구를 읽는다”고 말했다. 문구는 ‘우리는 한 생명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환자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높이기 위한 다짐이다.
치료팀은 요즘 가급적 개복수술 대신 복강경수술을 권한다. 복강경수술은 수술 상처가 작아 개복수술에 비해 회복속도가 빠르고 후유증이 적다. 입원 기간도 단축할 수 있다. 복강경 간절제수술 후 3년 생존율은 90%를 웃돈다.
최근에는 복부에 한 개의 수술 구멍만을 내는 단일통로복강경수술도 이용한다. 단일통로복강경수술은 상처와 후유증이 더욱 작다. 간경변증을 앓고 있던 환자의 회복에 유익한 수술 방식이다.
배 교수는 “간암처럼 복잡한 치료를 의사 한 사람이 결정하던 시대는 지났다”며 “최상의 치료법을 선택하는 것이 협진 체제를 유지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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