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 석 삼 十: 열 십 而: 말이을 이 立: 설 립
四: 넉 사 十: 열 십 不: 아니 불 惑: 미혹될 혹
‘논어’ 위정(爲政)에서 공자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三十而立 四十不惑.” 서른이면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고, 마흔에는 미혹됨 없이 일관되게 일을 추진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자립’의 ‘立’은 입덕(立德), 입언(立言), 입신(立身)의 의미를 담고 있다. 누가 봐도 그럴듯한 인품(立德)에, 세상에 내놓을 만한 의견(立言), 그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다진 사회적 기반 위에 서는 것(立身)을 말한다. 공자는 어려서부터 예(禮)를 익혔다. 그래서 중국의 철학자 펑유란(馮友蘭)은 ‘입’의 의미가 ‘사사로운 것을 버리고 예의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不惑’이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른에 자립하더라도 살다 보면 인생이 단순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럴 때 더욱 정도(正道)를 걸으라는 것이 불혹의 가르침이다. 공자의 30대는 좌절을 딛고 惑을 불식시키는 과정이었다. 공자는 34세에 주나라 노자(老子)에게 禮를 물으러 갔다가 “번잡한 예가 오히려 혼란의 근원”이라는 핀잔을 들었고, 35세에 제나라 경공에게 취직을 부탁했다가 거부당했다. 쓰이지 않는 禮를 공부해서 무엇 하겠는가. 30대의 공자에게 의혹(疑惑)이 들만도 했지만, 36세에 노나라로 돌아온 공자는 오로지 예악(禮樂)에 다시 몰두했다. 고통을 이겨내면서 남들보다 훨씬 오래 공부했다. 그리고 51세에 이르러 드디어 공자는 벼슬길에 나아갔다.
요즘은 서른보다 마흔이 화두다. 삶의 절반을 살아오면서 스스로의 삶에 대한 회의와 성찰이 우리 사회의 저변에 흐르고 있다는 의미이리라. 시인 백거이(白居易)도 “내 나이 불혹을 지났으니 물러나 쉬는 것도 정녕 이른 것이 아니다(我年過不惑 休退誠非早)”라고 했다. 마흔은 삶의 중요한 전환기다. 그렇기에 마흔부터 반생(半生) 혹은 중년(中年)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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