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를 신어도 괜찮다. 모자를 눌러 썼어도 상관없다. 자전거를 타다가, 조깅을 마친 뒤 가볍게 와인 한 잔을 기울일 수 있는 곳. 바로 양재천 와인의 거리다. 지하철 3호선 양재역 인근 영동1교부터 영동2교까지 이어지는 약 680m에 이르는 길이다. 10여 년 전부터 와인 바가 하나 둘 들어서더니 15곳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22년간 양재동에서 살았다는 가수 김세환 씨(64)와 함께 12일 이 거리를 걸었다. ○ 자전거 타다가 와인 한 잔으로 마무리
“양재천에 와인의 거리가 생긴 뒤 자전거 타는 기쁨이 늘었어요. 친구들과 자전거 타다가 와인 한 잔 마시면…아, 즐겁죠.”
2001년 와인의 거리에 가장 처음 문을 연 와인 바 ‘크로스비(CROSBY)’에서 만난 김 씨는 운동복 차림이었다. 1985년부터 산악자전거(MTB)를 탔다는 김 씨는 연예계에서 소문난 자전거 마니아다. 양재천에서 출발해 한강을 거쳐 여의도로 출근하거나 안양천까지 운동을 나가기도 한다.
“여의도까지 자전거로 50분 정도면 가요. 차가 막히면 자전거가 더 빠를걸요.”
가수 김창완 이문세 씨도 김 씨와 같은 자전거 동호회 멤버다. 함께 자전거를 타다가 와인의 거리에서 와인 한 잔씩 나눠 마시고 헤어지곤 한다. 조영남 윤형주 씨 같은 세시봉 멤버도 단골이다.
김 씨와 마주 앉은 크로스비는 와인의 거리 중간쯤에 있다. 가게 양쪽으로 야외테라스가 있는 와인 바가 늘어서 있다. 하얀 담장 위에 화분이 놓인 야외테라스나 나무 식탁과 의자가 놓인 실내는 마치 유럽 어느 동네 카페를 옮겨온 듯하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와인에 더 취하는데…. 오늘은 꽃이 덜 피었네.”
이곳은 김 씨처럼 양재동이나 도곡동에 사는 주민들이 운동을 하다가, 혹은 산책을 나왔다가 와인을 마시러 온다. 인근 사무실에 다니는 직장인도 많이 찾는다.
“강남에 이런 곳이 없다니까요. 자전거 바로 세우고, 그냥 걷다가 들어갈 만한 와인 바가 여기 말고 서울에 있겠어요?” ○ 동네 주민 겨냥한 와인 구비
청담동 가로수길이나 방배동 서래마을에 가서 와인 한 병을 마시면 20만 원이 훌쩍 넘어가기 마련이다. 와인의 거리는 그보다 가격이 저렴하다. 해가 지고 난 뒤에는 정장 차림 직장인도 찾아들지만 주부나 운동복 차림의 동네 주민도 상당수 이 거리를 점령한다.
크로스비 직원 김소연 씨는 “다른 곳의 와인 바와 다르게 주부들이 많이 찾아 이들이 좋아하는 와인을 많이 내놓는다”고 말했다. 치즈 모둠 3만5000원, 만두 1만 원.
좌석이 20석 남짓 되는 ‘인비토(INVITO)’는 아늑한 분위기가 특징. 화분이 즐비해 꽃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에떼(ETTE)’는 연인들이 찾기에 좋은 곳이다. 은은한 조명 아래 식탁마다 놓인 촛불을 앞에 두고 앉으면 절로 사랑 고백이 나올 듯했다. 카프레제 샐러드와 카베르네 소비뇽 세트가 7만9000원. 치즈가 섞인 샐러드는 인기 메뉴다. ‘엘리시아(ELYSYA)’는 나무 벽마다 아기자기한 그림이 가득한 실내가 모던한 느낌을 준다. 젊은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다. 우르메네카 카베르네 소비뇽 5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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