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참모들조차 놀랐다. 22일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대선 출마 선언은 그만큼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김 지사는 ‘자신의 뜨거운 가슴이 등을 밀고 있다’는 표현으로 결의를 다졌다. 하지만 스스로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며 현 상황을 묘사했다. 4·11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예상 밖의 승리를 거두며 ‘박근혜 대세론’이 더욱 공고해졌음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하지만 거꾸로 이런 상황이 그를 서두르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시간을 끌다가는 아예 ‘박근혜 대세론’에 눌려 출마 기회조차 잡지 못할 것이란 조급함이 작용했다는 얘기다. ○ “계란으로 바위 깬 경우 많다”
김 지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김문수는 자금, 인력, 조직이 없다”고 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며 만류한 분도 많았다”는 것이다. 실제 이날 기자회견장에 함께 참석한 현역의원은 차명진 임해규 김동성 의원 등 3명뿐이었다. 더욱이 이들은 모두 4·11총선에서 낙선했다. 19대 국회에서 소매를 걷어붙이고 김 지사를 도와줄 의원이 거의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김 지사의 조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2010년 경기지사 재선을 전후해 ‘광교포럼’ 등 외곽조직의 몸집이 커졌다는 게 김 지사 측 설명이다. 또 올해 2월 9일 출범한 국민통합연대도 사실상 김 지사를 돕기 위한 외곽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이 단체에는 허숭 전 경기도 대변인과 노용수 전 도지사 비서실장 등 김 지사의 측근들이 참여하고 있다. 김 지사의 팬클럽인 ‘문수랑’ 역시 전국 조직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당심(黨心)과 민심(民心) 모두에서 저만치 앞선 박 비상대책위원장의 대세론을 꺾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만큼 김 지사가 스스로 자신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의미다.
이날 김 지사가 ‘좌우에 대한 이해력과 포용력’ ‘사회와 국가에 대한 헌신’ 등을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기자들에게 “박 위원장과 나는 보면 볼수록 확실히 다르지 않나. 굳이 차별화하지 않더라도 살아온 길 등이 많이 다르다. 똑같은데 (대선 경선에) 나오면 낭비다”고 말했다.
‘인생 스토리’를 박 위원장과의 1차 차별화 포인트로 삼겠다는 얘기다. 김 지사가 이날 ‘고3 때 무기정학, 대학 때 2번의 제적, 대학 25년 만에 졸업, 공장에서 7년간 생활, 2번의 투옥’ 등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을 하며 겪은 인생역정을 일일이 설명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그는 “계란으로 바위를 쳐서 바위를 깬 경우도 많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시대정신으로, 절망하는 많은 분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면 실제로 (대선 경선 승리가) 일어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대선 출마 ‘1번 프리미엄’을 살려 2% 안팎에 머물고 있는 자신의 지지율을 단기간에 끌어올려야만 하는 김 지사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봉하마을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를 동시에 방문할 예정이다. 좌우를 넘나든 자신의 삶처럼 양쪽을 아우르는 리더십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 번갯불에 콩 볶아 먹기
김 지사의 대선 출마 선언 기자회견은 전날 저녁에야 확정됐다. 그의 최측근인 차 의원은 “22일 오전 2시까지 기자회견문을 다듬었다”고 말했다. 초스피드로 대선 출마를 준비하다 보니 시작부터 삐끗했다. 김 지사의 기자회견은 “19대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하며”로 시작됐다. 이번은 18대 대선인데 착각한 것이다.
김 지사는 20일 차 의원 등 측근 10여 명을 모았다. 연말 대선에 대한 구상을 나누기 위해서였다. 4·11총선 이후 소집된 첫 회의였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김 지사의 한 측근은 “총선 결과를 보면 당장 지사가 나오기는 힘든 것 아니냐. 지사도 장고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측근 회의에서도 특별히 결정된 게 없었다고 복수의 관계자가 전했다.
하지만 일부 언론이 자신의 대선 출마를 기정사실로 보도하자 그는 출마 결심을 굳히고 기자회견까지 일사천리로 진행시켰다. 그의 한 측근은 “지사는 역시 뇌가 발에 달린 사람”이라며 “늘 움직이면서 생각하고, 한번 결심하면 제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부 측근이 “공식 기자회견에 앞서 도민들에게 먼저 도지사직 사퇴와 관련해 이해를 구해야 한다”며 성급한 기자회견에 반대했지만, 김 지사는 “기자회견 뒤에 이해를 구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 지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나는 정치적 기교를 모른다. 정치세력을 등에 업고 나온 것도 아니다. 오로지 대한민국을 변화시키려는 맑은 신념만을 가지고 나섰다. 통일선진국의 길로 나아가자”고 호소했다. ▼ 민청학련 사건으로 제적 → 3선 의원 → 재선 경기도지사 ▼ ■ 김문수는 누구
김문수 경기지사는 ‘운동권’ 출신이다. 서울 경북고 3학년 때는 3선 개헌 반대 데모를 주도했다가 무기정학을 받았다. 1970년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뒤로는 학생운동에 투신해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제적됐다.
이후 서울 청계천 피복공장에서 재단보조공으로 일했다. 이어 전국금속노조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을 지내며 노동운동계의 거물이 됐다. 그 과정에서 두 차례에 걸쳐 2년 6개월간 수감되기도 했다.
1996년 신한국당(새누리당의 전신)에 입당해 15대부터 경기 부천 소사에서 내리 3선을 했다. 2004년 17대 총선 공천심사위원장을 맡는 등 당내 대표적 개혁인사로 꼽혔다. 2006년 경기지사에 당선됐으며 2010년 유시민 현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를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그는 “경기도 관찰사로는 698대로, 최장수”라고 말하곤 한다. 그는 지금도 꾸준히 택시운전을 하며 서민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경기지사 재선에 성공한 뒤 여권 내 잠재적 대선주자로 거론돼 왔으나 대선후보 지지율은 1%대에 머물러 있다. 지난해 “춘향전은 변 사또가 춘향이를 따먹는 이야기”라고 말해 구설에 올랐고, 경기 남양주소방서에 직접 전화를 걸어 “내가 도지사인데 이름이 누구냐”는 질문만 수차례 던져 ‘119도지사’란 오명을 쓰기도 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바로잡습니다]
‘김문수는 누구’ 기사에서 김 경기도지사의 출신 고교는 서울 경복고가 아닌 대구 경북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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