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2월 수사한 한주저축은행의 불법대출은 임원부터 팀장, 직원이 역할을 분담한 ‘총체적 비리’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에 따르면 이모 여신담당 이사는 지난해 12월 평소 알고 지내던 사업가 양모 씨(32)로부터 “사업자금으로 5억 원 정도 대출받고 싶다”는 부탁을 받았다. 당시 양 씨는 한주 측으로부터 이전에 대출받은 5억 원의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해 금융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 신분이었다.
이 이사는 이모 여신 팀장(45)에게 허위 담보 제공자와 차명 대출인을 물색하라고 지시했다. 이 팀장은 수 백억 원 대의 불법 대출을 주도한 혐의로 9일 저축은행비리 정부합동수사단(단장 최운식 부장검사)에 구속된 핵심 인물이다. 이 팀장은 허위 담보 제공자 박모 씨에게 사례비 2000만 원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서울 은평구 증산동 시가 2억여 원의 단독주택을 7억 원짜리로 둔갑시킨 허위 감정평가서를 작성했다. 이 팀장은 이후 차명 대출인인 또 다른 박모 씨에게 “본인 명의로 들어온 대출금을 양 씨에게 넘겨주면 사례비로 1000만 원을 주겠다”며 유인해 박 씨 명의의 통장과 현금카드, 도장까지 넘겨받아 담당 부서에 제공했다. 대출 서류 기안을 담당한 직원 국모 씨는 올해 1월 차명 대출인 박 씨가 정상적인 대출신청을 한 것처럼 여신거래약정서, 근저당설정계약서 등 대출 관련 서류를 전부 허위로 작성했다.
결국 한주저축은행은 보름 만인 1월 12일 박 씨 명의의 계좌로 ‘가짜 대출금’ 5억 원을 송금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임순 대표를 비롯한 저축은행 관계자 5명은 대출 신청자와 담보 제공자가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도 서류를 결재하는 등 암묵적으로 불법대출을 공모한 혐의를 받고 있다.
통장에 입금된 돈이 불법 대출 자금임을 눈치 챈 차명 대출인 박 씨는 1월 14일 5억 원을 챙겨 잠적했다. 대출 의뢰인 양 씨는 박 씨와 연락이 두절되자 이 이사에게 이 같은 사실을 알렸고 이 이사는 은행 연합 전산망으로 박 씨의 거래정보를 무단 조회했다. 5억 원 중 3억 원이 박 씨의 후배 김모 씨와 송모 씨의 계좌로 입금된 사실이 금세 드러났다. 이 이사는 이들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를 양 씨에게 건넸고 양 씨는 서울 용산구 김 씨의 집에 조직폭력배 금모 씨(28) 등을 보내 “훔쳐간 돈을 내놓으라”며 가족들을 협박한 끝에 대출금 3억 원을 회수했다.
경찰은 2월 “이태원 주택가에서 조직폭력배들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금 씨가 회수한 자금이 저축은행의 불법대출 자금임을 확인한 뒤 수사를 확대했다.
경찰 관계자는 “저축은행 영업정지 이후 이 이사가 166억 원을 갖고 잠적하자 김 대표가 오히려 ‘경찰이 2월 수사할 때 구속시켰으면 이럴 일 없지 않았느냐’고 한탄했다”며 “변호인단을 선임해 영장 기각에 힘썼던 피의자에게 그런 말을 들어 황당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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