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선거부정 의혹에 대한 압수수색과 관련해 ‘가장 적절한 시기가 언제인가’를 두고 고민을 거듭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보수시민단체 라이트코리아가 이달 2일 통진당 선거부정 의혹을 고발한 이후 검찰은 언제든지 압수수색을 실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수사팀에선 신중론이 우세했다고 한다. 검찰의 압수수색은 수세에 몰린 당권파에 ‘야당 탄압’이라는 반격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압수수색이 너무 늦어지면 증거인멸 우려가 높아지는 점도 간과할 수 없었다고 한다. ○ “19대 국회 개원 전에는…”
검찰이 21일 압수수색을 단행한 배경에는 “더는 미룰 수 없다”는 판단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통진당 비례대표 이석기 김재연 당선자에 대한 사퇴 여론 등 국민적인 반감이 점점 고조되는 데다 이달 30일 19대 국회가 개원하면 선거 부정 의혹의 중심인 두 당선자에 대한 직접 수사가 사실상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 관계자는 “(당선자에 대해서는) 아직 수사할 계획이 없지만 혹시 조사를 하게 되더라도 참고인 신분이 될 것”이라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당권파가 20일 비당권파의 혁신비대위에 맞서 당원비대위를 출범시키는 등 당내 수습 가능성이 점점 낮아지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 대리투표―순위 조작 의혹이 수사 대상
검찰 관계자는 21일 “업무방해와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압수수색을 했다”고 밝혔다. 결국 이청호 통진당 부산 금정위원장이 최초 폭로했던 대로 대리투표와 소스코드 열람을 통한 순위 조작 의혹을 밝히는 것이 이번 수사의 종착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당내 경선을 통해 비례대표 순번을 정할 때 당권파가 고의적으로 조직적인 대리투표를 주도했거나 소스코드를 열람한 뒤 순위를 조작한 의혹이 확인되면 관련자들에게 ‘위계(僞計)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가 적용돼 5년 이하 징역형이 선고될 수 있다.
압수수색 및 분석이 마무리되면 경선 과정 전반에 대한 관리 책임이 있었던 주요 관련자들에 대한 소환 조사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당권파의 핵심으로 사무총국을 장악하고 있었던 장원섭 전 사무총장과 백승우 전 사무부총장 등이 우선 소환 조사 대상으로 꼽히고 있다.
○ 통진당 “당원 명부 절대 내줄 수 없다”
이날 검찰의 압수수색 대상은 당원 명부와 비례대표 경선 관련 투·개표 기록, 선거인 명부, 투표지, 현장투표 진행 경과 자료, 경선 관련 전산 자료, 투·개표 내용이 기록된 데이터베이스 등이다. 특히 당원 명부는 비례대표 경선 부정 의혹, 통진당의 정치자금 및 불법 당원 논란 등을 일거에 풀어낼 열쇠다. 당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는 물론이고 당비 납부명세까지 기록돼 있어 조직의 근간을 꿰뚫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령당원 문제나 동일 인터넷주소(IP)에서의 중복투표 논란 등 통진당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 제기된 부정 의혹을 풀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통진당은 당원 명부에 대해 “당의 심장과 같은 것으로 절대 내줄 수 없다”(강기갑 혁신비대위원장), “2010년 2월 민주노동당 당 서버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온 검찰에 맞서 4개월 동안 당원 명부를 지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웠다”(당권파) 등의 반응을 보이며 사수 의지를 다졌다.
현행법상으로 당원 가입 및 당비 납부가 불가능한 교원, 공무원 등 당원들의 실체가 검찰의 손에 들어갈 경우 통진당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분석된다. 서울중앙지법은 올 1월 과거 민주노동당에 가입하고 당비를 낸 혐의로 기소된 240여 명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교사와 공무원에 대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유죄를 선고했었다. 정치권에서는 검찰이 당원 명부를 확보할 경우 지난해 왕재산 사건이나 과거 민노당 분당으로 이어졌던 일심회 간첩단 사건 이상의 파문을 불러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미 일부 자료가 인멸됐다는 의혹도 있지만 검찰은 경선과 관련한 증거자료를 최대한 확보할 방침이다. 다만 회계자료는 선거 부정 의혹과 관계가 없는 만큼 압수수색 대상에서 제외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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