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곳은 서울 관악구 낙성대(落星垈)다. 강 장군의 어머니가 별이 품속으로 떨어지는 태몽을 꾸고 아들을 낳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뒤로 주민들은 낙성대를 ‘인재가 태어나는 곳’으로 여겨 왔다. 서울대가 1970년대 관악구로 이전한 걸 보면 주민들의 믿음은 사실이 된 듯하다.
20일 찾은 낙성대 ‘문화의 거리’에는 또 다른 인재를 낳기 위한 시설들로 가득했다. 서울영어마을 관악캠프, 관악예절원, 구립도서관, 안국사(安國祠), 서울시 과학전시관 같은 교육 체험 시설이 늘어서 있다. 이날 함께 이곳을 걸은 인기 동화구연작가이자 교육활동가인 서정숙 씨(56·여)는 인재 육성을 ‘나무 키우기’에 비유했다. 뿌리가 튼튼해야 가지가 높고 곧게 뻗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서 씨가 서울대 후문을 향해 쭉 뻗은 길을 뒤로하고 왼쪽에 난 작은 흙길로 들어서며 말했다.
“가족이 함께 걷기엔 이런 길이 더 좋습니다. 훌륭한 인성을 갖춰야 인재도 될 수 있는 것이죠.” ○ 모든 교육은 공감에서 시작해
서 씨를 따라 걸어 들어가니 관악예절원이 나왔다. 서울 서남권에서 유일한 전통예절원으로 인사법부터 다도 서예 전통문화와 놀이를 배울 수 있다. 예절원에 들어오면 신발을 벗을 때도, 자리에 앉을 때도 조심스러워진다. 강금주 문화수호미는 “밖에서는 ‘쩍벌남’ ‘쩍벌녀’였던 학생들도 꼼짝없이 얌전해진다. 조신하게 걷고 얌전히 앉는다”며 웃었다. 예절원 홈페이지(www.gwanakyae.co.kr)에서 일정표를 확인하고 방문하면 된다.
“생생한 체험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대단해요. 주입식 교육과 달리 스스로 공감하고 경험하면 오래도록 기억에 남죠.”
서 씨도 학생들이 공감할 수 있는 교육 방법을 고민했다. 그러다 찾은 것이 연극이다. 재미와 공감을 모두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장애아동과 다문화가정에 대한 연극을 만들어 각 자치구를 돌며 공연했다.
올해는 학교 폭력에 대한 새로운 연극을 준비하고 있다. 서 씨가 직접 운영하는 실버연극단은 동물이 나오는 우화로 학교 폭력 문제를 다뤄 무대에 올린다. 9월부터 시내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를 돌며 공연을 펼칠 계획이다. 서 씨는 “딱딱한 학교 교육은 호소력이 떨어진다. 연극을 보고 적어도 신고전화가 117이라는 정도는 기억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 자녀와 함께 걷는 길
예절원에서 나오자마자 왼쪽 흙길로 들어서면 낙성대공원과 구립도서관이 나온다. 설치미술가 배영환 씨가 컨테이너를 이용해 만든 46m²(약 14평) 규모의 작은 건물 두 개에 3000권의 책이 진열돼 있다. 길을 걷다 잠시 들러 책을 읽기에 부담 없는 크기다. 도서관을 지나 조금 더 걸으면 강감찬 장군의 사당인 안국사가 나온다. 나무가 많아 시원하고 고즈넉해 감춰뒀던 속내를 털어놓기도 좋은 곳이다.
“조용한 길을 걸으며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하면 아이가 진짜 원하는 바가 뭔지 알게 되죠.”
서 씨는 입시교육 위주의 우리 사회에서 아이와 부모가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걱정했다. 자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함께 걷는 게 좋다고 권했다.
“가까운 곳에 이런 좋은 길이 있는 걸 모르는 것처럼 부모가 오히려 아이에 대해 잘 모르고 사는 경우가 많아요. 오늘이라도 당장 아이와 손잡고 걸어 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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