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 한층 코믹해진 ‘맨오브라만차’…잠자는 돈키호테를 깨워라

  • 동아닷컴
  • 입력 2012년 6월 29일 14시 39분


●현실의 관객들과 새롭게 소통하는 2012년형 돈키호테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황정민, 또 한번의 꿈을 찾기 위한 도전
●관객들과 가까워진 호흡은 Good, 진지함이 떨어진 것은 Bad
●스산한 무대 구성과 생동감 넘치는 음악의 절묘한 조화

‘맨오브라만차’ 세르반테스(돈키호테) 역 배우 황정민. 사진 제공ㅣ오디
‘맨오브라만차’ 세르반테스(돈키호테) 역 배우 황정민. 사진 제공ㅣ오디

웃음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다소 진지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은 순간순간 관객들과 호흡했고, 관객들은 웃음과 탄성을 아끼지 않았다.

새롭게 태어난 2012 ‘맨오브라만차’를 지난 24일 만났다. 2005년 뮤지컬 ‘돈키호테’로 한국 관객들에게 첫선을 보인 이후 2007년, 2008년, 2010년 3번의 재공연을 가진 ‘맨오브라만차’는 2008년 제2회 ‘더뮤지컬어워즈’에서 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고 5개 부문 수상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만큼 꾸준하고 뜨거운 사랑을 받아온 ‘맨오브라만차’. 이번에는 연기파 배우 황정민과 뮤지컬계 국민배우 서범석, 폭발적인 가창력의 홍광호가 주인공 ‘세르반테스(돈키호테)’ 역에 트리플 캐스팅 돼 더욱 큰 기대를 모았다.

이날 공연한 황정민은 기대 못지않게 열정적인 연기와 안정적인 가창력을 보여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노련함이 엿보이는 알돈자 역의 이혜경, 여전히 생동감 넘치고 귀여운 산초 역의 이훈진, 제 옷을 입은 듯한 여관주인 역의 서영주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이날 150분의 공연 시간은 짧게 느껴질 정도로 강렬했다. 하지만 그 여운은 지난 시즌에 비해 다소 약했다.

왜 그랬을까. 즐거움과 아쉬움이 동시에 남았던 ‘맨오브라만차’를 되짚어보았다.
▶ 무대와 음악, 매력적인 연기 모두 합격

캄캄한 지하 감옥에 들어선 한줄기 빛이 낯설다.

입체감 있으면서도 황량한 지하동굴 무대가 공연 전부터 스산한 느낌을 체화시켜 놓았다. 이에 들려오는 웅장한 호른 소리와 경쾌한 현악기 소리는 작품이 펼쳐나갈 이야기를 미리 예고했다.

미국 브로드웨이 원작 뮤지컬인 ‘맨오브라만차’는 ‘돈키호테와 세르반테스가 한 인물이었다’는 설정 아래, 세르반테스가 감옥에서 죄수들에게 극중극 형식으로 돈키호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용을 그린다.

시인이자 극작가, 세무공무원인 세르반테스는 신성모독죄를 이유로 지하 감옥에 갇힌다. 그가 펼치는 극중 극에서 백발의 노인 알론조는 자신이 돈키호테 기사라고 착각하고 산초와 함께 모험을 떠난다. 풍차를 괴수 거인이라고 달려들고, 여관을 성이랍시고 찾아가 하녀 알돈자를 아름다운 여인 둘시네아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미친 노인이라 무시하지만, 희망이 없는 삶을 살던 알돈자는 그에게서 희망을 발견하고, 점차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공연은 쉴 틈을 주지 않고 이어졌다. 초반부터 긴박한 스토리 전개와 산초, 신부, 가정부 등의 코믹한 연기는 유쾌한 웃음을 틈틈이 전달했다. 음악도 빈틈이 없다. 꽉 찬 연주, 폭발적인 가창력은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극 중 ‘그분의 생각 뿐’ 공연 모습. (왼쪽부터) 안토니아 역 김수정-신부 역 이영기- 가정부 역 김명희. 사진 제공ㅣ오디뮤지컬
극 중 ‘그분의 생각 뿐’ 공연 모습. (왼쪽부터) 안토니아 역 김수정-신부 역 이영기- 가정부 역 김명희. 사진 제공ㅣ오디뮤지컬

특히 이날 주인공 세르반테스 역을 맡은 황정민의 연기는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매력이 돋보였다. 2008년도 영화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에서의 꿈찾기 열정이 흘러간 세월에도 더욱 뜨겁게 재현됐다. 3년 만의 뮤지컬 복귀라는 것이 무색할 만큼, 연기와 노래도 안정적이었다.

다소 긴장한 듯 어깨에 힘이 들어갔으나, 감옥에 갇힌 상황과 백발 노인의 무리한 모험이란 상황 등은 오히려 이 힘을 긴장감 있는 연기로 승화시켰다.

그가 공연 전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던 “1인 2역이니만큼 두 가지 모습을 각기 다르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던 바람도 잘 보여졌다. 그가 연기한 노인 목소리와 거동 등은 알론조를 섬세하게 묘사했다.

산초 역의 이훈진, 알돈자 역의 이혜경 역시 오랜 경력이 말해주는 노련함이 엿보였다. 여관주인 역의 서영주는 의외의 웃음을 전하며 극의 흐름을 생동감 있게 전개해나갔다.

▶미친 노인으로 머물 것인가, 꿈의 기사가 될 것인가

이렇듯 완벽하게, 쉴 새 없이 진행된 공연도 아쉬움을 남겼다.

돈키호테, 산초와 ‘헉헉’ 거리며 모험을 뒤따르고, 알돈자의 계속되는 시련에 함께 아파하고, 이전 공연에서 볼 수 없었던 배우들의 코믹한 애드립에 ‘깔깔’ 웃다 보니 어느샌가 공연이 끝나있다.

알론조가 미친 노인, 혹은 돈키호테가 되어 달려온 모험은 과연 관객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전달했을까.

세르반테스(돈키호테) 역 황정민이 거울의 기사들 앞에서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깨닫고 있다. 사진 제공ㅣ오디뮤지컬
세르반테스(돈키호테) 역 황정민이 거울의 기사들 앞에서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깨닫고 있다. 사진 제공ㅣ오디뮤지컬

급작스럽게 그에게 닥친 거울의 기사 만큼이나 마지막 순간에 툭 떨궈진 무거운 주제의식은 어색하게 느껴졌다.

웃음은 자연스럽고 좋았다. 배우들은 어느 때보다 관객들에게 한걸음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하지만 웃음이 채운 공간을 고민할 수 있는 공백으로 남겼더라면 여운이 더 길게 남았을까.

절대 가볍지 않은 ‘맨오브라만차’의 주제의식이기에 마지막 순간, 관객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지기에는 분명 아쉬움이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맨오브라만차’의 주제곡 ‘이룰 수 없는 꿈’은 여전히 먹먹했다.

번번이 싸움에서도 지고, 사람들에게 미쳤다고 핍박 받는 돈키호테. “왜 이렇게 사나요?” 묻는 알론조의 말에 대한 그의 답변.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슬픔 견딜 수 없다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 믿고 따르리라. 이게 나의 가는 길이요. 내가 영광의 이 길을 진실로 따라가면 죽음이 나를 덮쳐와도 평화롭게 되리.”

그는 2012년에도 꿈과 이상을 노래하고 있었다. 더욱 진정성이 느껴지는 꿈의 기사가 되어 현대인들의 마음 속에 감춰진 돈키호테들을 깨울 수 있길 기대해본다.

‘맨오브라만차’는 서울 잠실 샤롯데씨어터에서 6월 22일부터 10월 7일까지 공연된다.

동아닷컴 원수연 기자 i2ove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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