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왕은 하루 5끼를 먹어야 한다고 정해져 있었다. 새벽에 죽으로 시작해 오전 10시, 오후 2시, 오후 4∼5시, 오후 7∼9시에 식사를 했다. 한데 21대 임금인 영조는 3번만 올리라 명했고 배불리 먹은 적이 없다고 전해진다. “임금인 내가 그렇게 많이 먹을 필요가 없다”는 백성을 위한 명분을 내세웠으나 약골인 데다 위장이 좋지 않아 과식을 피했다는 분석이다. 식탐(食貪)을 삼갔던 영조는 조선시대 27명의 왕 중에서 최장수 왕으로 기록된다. 역사학자들은 당시 평균 수명을 50세 정도로 보는데, 영조는 83세까지 살았고 왕으로 통치한 기간만 52년을 헤아린다.
▷임금의 건강은 국가의 중대 사안이었다. 건강을 지키려면 섭생이 으뜸인지라 ‘승정원일기’는 왕의 식성과 식사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기록을 남겼다. 11일 열리는 ‘인문학자가 차린 조선왕실의 식탁’이란 주제의 한국학중앙연구원 심포지엄에선 영조의 식습관을 비롯한 궁중의 음식문화에 대한 내용들을 다루었다. 경인교대 김호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날이면 날마다 수라상에 산해진미가 오를지라도 왕들은 어려서부터 과식을 멀리하는 절제의 미덕을 몸에 익혀야 했다. 온실 속 화초처럼 살아왔기에 평민과 달리 체질이 강하지 못해서 먹는 데 집착했다가는 병을 부르기 쉬웠다.
▷왕실뿐 아니라 사대부들도 소식(小食)을 강조했다. 조선 중기 학자인 소재 노수신은 “많이 먹지 말고, 아무 때나 먹지 말고, 배고픈 후에 먹어야 하며, 먹을 때 배부르게 먹어서는 안 된다”는 글을 남겼다. 동래부사와 수군절도사를 지낸 이창정은 광해군 12년에 펴낸 책에서 “한평생 음식을 대할 때 그 반만 먹고 늘 ‘부족하구나’ 하는 마음이 들도록 먹어야 한다”며 식사의 절제를 강조했다.
▷영조는 보리밥을 물에 말아먹는 서민적 밥상을 즐겼다. 현대 의학의 축적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나이가 들수록 흰쌀 밀가루 육식을 줄이고 채소 보리 콩 등 잡곡과 채소를 즐겨 먹어야 한다. 배를 80%만 채우는 기분으로 먹으면 의사가 필요 없다는 말도 있다. 영조의 향년(享年) 83세는 현재 한국 여성의 평균 수명밖에 안되지만 의학이 발달한 지금 기준으로 보면 영조는 100세가량 살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영조가 실천한 식단은 요즘 병원에서 성인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식사요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 바로잡습니다 ▼ 11일자 A30면 ‘임금의 장수 밥상’ 중 ‘소재 노수진’은 ‘소재 노수신’이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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