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회 전국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대통령상 ‘이너 지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25일 03시 00분


고양 화정고 정승윤 군, 대통령상 ‘이너 지퍼’
지퍼의 슬라이더가 이빨 속으로 움직여 옷 끼임 방지

옷이 끼이지 않는 ‘이너 지퍼’를 개발한 정승윤 군이 제34회 전국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옷이 끼이지 않는 ‘이너 지퍼’를 개발한 정승윤 군이 제34회 전국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급하게 지퍼를 올리다가 옷이 끼어 고생한 적이 있으시죠? 저도 그런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냥 짜증만 냈다면 제 발명품은 안 나왔을 겁니다. 불편함이 제게 기회를 준 셈이죠.”

‘이너 지퍼’로 대통령상을 받은 경기 고양시 화정고 2학년 정승윤 군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발명을 해 상을 타게 된 동기는 ‘그저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올해 3월 14일 정 군은 평소와 다름없이 학교수업이 끝나고 집에 빨리 가려는 생각에 가방을 싸고 급하게 상의 지퍼를 올렸다. 그런데 가방에 달려있던 끈이 지퍼 사이에 끼고 말았다. 한참을 낑낑대는 사이, 며칠 전 어머니도 겉옷의 지퍼에 스카프가 끼어 불편해 하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불현듯 ‘걸리지 않는 지퍼를 만들 순 없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집에 돌아와 지퍼를 뚫어져라 관찰했다. 문제는 지퍼를 물고 움직이는 슬라이더와 지퍼 양쪽 이빨 사이의 틈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 정 군은 낀 옷을 꺼낼 수 있도록 지퍼에 뚜껑을 달거나 슬라이더의 모양을 변경하는 방법을 생각했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아니었다. 별다른 진척 없이 일주일쯤 지났을 때 ‘번쩍’ 하고 생각의 대전환이 일어났다. 슬라이더가 이빨을 감싸는 것이 아니라 이빨 사이로 움직이게 하는 방법이 생각난 것이다. 이빨 안쪽에 T자 모양의 구멍을 파고 슬라이더가 그 안으로 움직이게 하는 개념도를 순식간에 그려냈다. 이렇게 만들면 밖으로 툭 튀어나와 보기에 좋지 않고 피부에 상처를 줄 수도 있는 슬라이더가 지퍼 이빨 속으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대통령상을 수상한 정승윤 군의 ‘이너 지퍼’는 이빨 사이로 지퍼의 잠금장치가 움직이는 방식으로 기존 지퍼의 상식을 뒤집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통령상을 수상한 정승윤 군의 ‘이너 지퍼’는 이빨 사이로 지퍼의 잠금장치가 움직이는 방식으로 기존 지퍼의 상식을 뒤집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해결 방법은 생각해냈지만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바로 그림 속 발명품을 실물로 만드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딱딱한 종이인 ‘하드보드지’로 만들어 보려고 했지만 생각처럼 잘라지지가 않았다. 한참을 고민하던 정 군은 미술교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미술교사는 스티로폼 재질인 ‘우드락’을 추천했다. 작업은 훨씬 쉬웠지만 스티로폼이기 때문에 부서지기 쉽고 마찰력도 커서 슬라이더가 잘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미완성 상태임에도 창의성을 인정받아 경기도 대표로 전국대회에 나갈 수 있었다.

한번 길이 열리자 어려움에 부닥치더라도 계속 극복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부모님과 정종현 지도교사의 도움을 받아 이너 지퍼를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줄 회사도 찾을 수 있었다. 3차원 설계도는 디자인업체에서 근무하는 사촌형의 도움을 받았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발명은 한 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뭔가를 만들어 낸 다음 끊임없이 수정을 하면서 더 좋은 방향으로 간다는 거죠. 이때 필요한 것은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이에요. 문제를 알면 해결책이 보이고 해결책이 분명하면 도움의 손길도 얻을 수 있는 거죠.”

“승윤이가 지난해 겨울 경기도 창의력경진대회에 나가겠다며 찾아왔어요. 과학 동아리 회원도 아니어서 처음에는 그저 신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엔 전국대회에 나갈 자격을 얻지 못했는데 다시 발명품대회에 도전해 좋은 성과를 거둔 것을 보니 참 기특합니다.”

정 교사는 아이디어를 내는 데 그치지 않고 문제 해결책을 스스로 찾아가는 정 군을 침이 마르게 칭찬했다.

대학에서 전기전자공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정 군은 “사람들의 불편함을 덜어주는 것이 과학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발명품뿐만 아니라 앞으로 하는 공부를 통해서도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채널A 영상] 집에 빨리 갈 수 있는 가방? 학생 발명품 ‘아이디어 톡톡’


이재웅 동아사이언스 기자 ilju2@donga.com  
#이너 지퍼#정승윤#지퍼#슬라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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