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화정고 정승윤 군, 대통령상 ‘이너 지퍼’
지퍼의 슬라이더가 이빨 속으로 움직여 옷 끼임 방지
“급하게 지퍼를 올리다가 옷이 끼어 고생한 적이 있으시죠? 저도 그런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냥 짜증만 냈다면 제 발명품은 안 나왔을 겁니다. 불편함이 제게 기회를 준 셈이죠.”
‘이너 지퍼’로 대통령상을 받은 경기 고양시 화정고 2학년 정승윤 군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발명을 해 상을 타게 된 동기는 ‘그저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올해 3월 14일 정 군은 평소와 다름없이 학교수업이 끝나고 집에 빨리 가려는 생각에 가방을 싸고 급하게 상의 지퍼를 올렸다. 그런데 가방에 달려있던 끈이 지퍼 사이에 끼고 말았다. 한참을 낑낑대는 사이, 며칠 전 어머니도 겉옷의 지퍼에 스카프가 끼어 불편해 하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불현듯 ‘걸리지 않는 지퍼를 만들 순 없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집에 돌아와 지퍼를 뚫어져라 관찰했다. 문제는 지퍼를 물고 움직이는 슬라이더와 지퍼 양쪽 이빨 사이의 틈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 정 군은 낀 옷을 꺼낼 수 있도록 지퍼에 뚜껑을 달거나 슬라이더의 모양을 변경하는 방법을 생각했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아니었다. 별다른 진척 없이 일주일쯤 지났을 때 ‘번쩍’ 하고 생각의 대전환이 일어났다. 슬라이더가 이빨을 감싸는 것이 아니라 이빨 사이로 움직이게 하는 방법이 생각난 것이다. 이빨 안쪽에 T자 모양의 구멍을 파고 슬라이더가 그 안으로 움직이게 하는 개념도를 순식간에 그려냈다. 이렇게 만들면 밖으로 툭 튀어나와 보기에 좋지 않고 피부에 상처를 줄 수도 있는 슬라이더가 지퍼 이빨 속으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해결 방법은 생각해냈지만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바로 그림 속 발명품을 실물로 만드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딱딱한 종이인 ‘하드보드지’로 만들어 보려고 했지만 생각처럼 잘라지지가 않았다. 한참을 고민하던 정 군은 미술교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미술교사는 스티로폼 재질인 ‘우드락’을 추천했다. 작업은 훨씬 쉬웠지만 스티로폼이기 때문에 부서지기 쉽고 마찰력도 커서 슬라이더가 잘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미완성 상태임에도 창의성을 인정받아 경기도 대표로 전국대회에 나갈 수 있었다.
한번 길이 열리자 어려움에 부닥치더라도 계속 극복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부모님과 정종현 지도교사의 도움을 받아 이너 지퍼를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줄 회사도 찾을 수 있었다. 3차원 설계도는 디자인업체에서 근무하는 사촌형의 도움을 받았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발명은 한 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뭔가를 만들어 낸 다음 끊임없이 수정을 하면서 더 좋은 방향으로 간다는 거죠. 이때 필요한 것은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이에요. 문제를 알면 해결책이 보이고 해결책이 분명하면 도움의 손길도 얻을 수 있는 거죠.”
“승윤이가 지난해 겨울 경기도 창의력경진대회에 나가겠다며 찾아왔어요. 과학 동아리 회원도 아니어서 처음에는 그저 신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엔 전국대회에 나갈 자격을 얻지 못했는데 다시 발명품대회에 도전해 좋은 성과를 거둔 것을 보니 참 기특합니다.”
정 교사는 아이디어를 내는 데 그치지 않고 문제 해결책을 스스로 찾아가는 정 군을 침이 마르게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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