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15년 넘게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실질적 사형제 폐지 국가이다. 이를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가는 징표로 봐야 할까. 어떤가. 그래서 자랑스러운가.
내가 한국에 온 뒤로도 수십 번 죽여 마땅할 수많은 흉악범이 주기적으로 등장했다. 유영철 강호순 김길태. 수원 여성 살인사건의 범인 오원춘. 지난달에도 제주 관광 여성 살해사건과 경남 통영 아동 살해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이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저런 놈을 우리의 세금으로 평생 먹여 살릴 수 없다. 당장 사형시켜라”라는 여론이 고조됐지만 여전히 사형이 집행되지는 않고 있다.
2년 전 여의도연구소 여론조사에 따르면 사형제 찬성은 83.1%이고 반대는 11.1%였다고 한다. 압도적 다수가 사형제를 찬성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작 집행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사형제 부활로 인권 후진국으로 찍혀 버릴 것 같은 공포가 우리를 휘감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경험상 외국의 평가에 민감한 것은 남과 북이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물론 어떤 기준과 세계관으로 접근하는가에 따라 사형제에 대한 찬반 견해는 갈릴 수 있다. 사형제를 범죄 예방적 차원으로 접근한다면 사형으로 인해 살인사건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목소리에 공감할 수도 있다. 반면 정의(正義)의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남의 목숨을 뺏은 자는 자신의 목숨으로 갚아야 한다”는 단순한 해답에 동의할 수도 있다.
나는 앞으로 사형제 찬반을 고려할 때 통일 한국도 꼭 상상해 볼 것을 권고하고 싶다. 영원히 분단돼 살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의 내 고향에선 도둑질을 한 30대 후반 남성이 공개 총살됐다. 그는 개 수십 마리를 훔쳐 잡아먹었다. 그러나 그가 사형에 처해진 진짜 이유는 증거품을 소각하다가 ‘실수’로 김일성 배지를 함께 불태웠기 때문이다. 물론 진짜 이유는 공개되지 않는다.
사형 집행일에 당국은 수백 명 관중의 맨 앞에 사형수의 아내와 10대 미만 자녀 두 명을 앉혔다. 남편과 아버지의 죽음을 똑똑히 지켜보라는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사형이 집행되기 전 아내를 강요해 “동무는 당의 신임을 저버렸으니 목숨으로 그 대가를 갚아야 합니다”라는 연설까지 하게 만들었다. 이어 사형 집행인 3명이 사형수의 머리에 총을 쏘았다…. 그 이상 자세한 묘사가 필요한가.
이런 일이 내 고향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탈북자들은 누구나 끔찍했던 공개 처형의 악몽을 떠올린다. 소를 잡아먹었다고, 전기선을 훔쳤다고 공개 처형되고 있다. 이런 전근대적인 야만의 법이 지배하던 북한에 ‘사형제’를 폐지한 선진적인 남한법을 도입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도무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조선족 오원춘은 체포 직후 경찰에게 “많이 맞을 줄 알았는데 때리지 않아 고맙다”고 말했다. 통일 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북한 출신 흉악범에게서 “총살될 줄 알았는데, 평생 매끼 이밥을 챙겨 주셔서 노동당보다 훨씬 더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들어야 할까.
통일은 통일항아리가 가득하다고만 되는 것이 아니다. 사형제 존폐 문제는 분명 통일 이후 커다란 이슈로 떠오를 문제 중 하나다. 아마 사형을 하지 않는다면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남북에 넘쳐날 것이다. 과연 그 여론을 감당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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