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서승직]지자체 신청사의 ‘디자인 오버’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16일 03시 00분


서승직 인하대 건축학부 교수
서승직 인하대 건축학부 교수
혈세 낭비의 표본이 된 일부 지자체 호화 청사의 국민적 지탄이 채 가시기도 전에 2014년까지 지방혁신도시와 세종시 등으로 이전하는 공기업 신축청사에 대해 호화청사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방으로 이전할 예정인 기관 147곳 중 121곳이 신청사 건축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이들 기관 중 일부는 만성적자 운영으로 빚더미에 있으면서도 또 빚을 내 신청사 건축을 계획하고 있어 국민을 더욱 실망케 하고 있다.

공기업의 청사 신축에 대해 크게 염려하는 사항은 방만한 청사 규모와 국민 혈세를 쏟아붓는 천문학적인 공사비다. 게다가 공공기관의 역할과 기능에 충실할 수 있는 효율적인 청사가 아니라 건축주(建築主)의 요구에 따른 지나친 상징성을 추구하는 것도 문제다. 주변 환경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건물 내 외형의 디자인 오버(design over)는 청사라는 공공건물을 흉물스럽고 골칫덩어리가 될 건물로 만들어버린다.

건축 계획의 기본을 간과한 지나친 디자인 추구는 방만한 청사 규모와 천문학적인 공사비 증액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디자인 오버는 건축의 기본인 구조·기능·미와 환경과 에너지 문제를 분별없이 조합한 잘못된 디자인의 극치로 볼 수 있다.

신축 공기업 청사들은 친환경 건물을 내세워 계획되고 있다고 하지만 친환경 인증을 받았다는 건물들이 오히려 디자인 오버로 에너지 효율의 등외 등급 판정을 받은 경우가 많다.

장점만을 내세워 적용된 공공청사의 유리벽도 디자인 오버 사례 가운데 하나다.

국내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수려한 외관, 공기 단축, 공사비 절감 등을 이유로 외벽 전체가 유리로 된 일명 장막벽인 커튼월(curtain wall)이 경쟁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유리 커튼월은 아름답고 탁 트인 개방감과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쾌적감을 주기도 하지만 외부의 일순간적인 기후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창가로 유입되는 뜨거운 복사열과 차가운 냉기 등을 결코 막아낼 수 없다.

해가 떠 있는 겨울철 낮 동안 같은 건물 같은 층의 경우만 살펴봐도 남쪽으로 접한 방은 찜통이 되는 반면 북쪽으로 접한 방은 냉골이 돼 남쪽은 냉방을, 북쪽은 난방을 해야 하는 상황도 벌어져 결국 냉·난방 에너지 소비만 증가시킨다.

유리 커튼월은 유리의 3가지 특성인 열 손실과 취득을 나타내는 열 관류율, 조망과 채광을 좌우하는 가시광선 투과율, 실내의 과열과 냉방에너지 저감에 영향을 주는 태양열취득계수 등을 꼼꼼히 살펴서 적용해야 하며 적용 시에는 유리의 단점을 보완할 건축 디자인이 꼭 필요하다.

통상 유리 커튼월에는 판유리를 가공한 복층유리나 로이코팅 복층유리(태양의 복사열 조절을 위해 코팅한 유리) 등이 사용되지만 단열 성능은 일반 단열벽체의 절반도 안 된다. 그리고 아무리 우수한 광학적 특성을 지닌 로이코팅 복층유리라 하더라도 외벽의 단열재로 사용하는 것은 난센스다.

공기업 청사의 디자인 오버는 건축계획의 기본 개념을 무시하고 지나친 디자인적 상징성만 추구한 데서 비롯된 것이지만 결국은 이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의 절대적 역할 부족 문제로 지적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우리의 공기업 청사 계획에서는 지역의 주변 특성이 잘 고려된 디자인에 대한 노력을 찾을 수 없다.

호화 청사의 출현을 막고 역사에 남을 기념비적인 청사를 짓는 일은 오직 책임을 맡은 건축주의 의지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서승직 인하대 건축학부 교수
#시론#서승직#호화청사#세종시#신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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