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죄수복을 입은 25세 여성에게서 최후 진술이 흘러나왔다. 떨리는 목소리에 눈물이 섞였다. 엄숙한 법정은 방청객들이 훌쩍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그녀의 애끓는 진술에 재판장의 얼굴에도 애잔함이 번졌다. “나 하나만을 바라고 살아온 홀어머니의 회갑을 맞게 되었으나 끼니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는 곤궁한 살림에 시달려 쌀을 마련할 길이 없어 고민한 나머지….”
범죄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반듯한 외모의 여성. 1000환권 위조지폐를 사용하다 붙잡힌 미술학도 임모 씨(25·여)였다. 임 씨는 캔버스 대신 누런 종이에 지폐에 있는 문양과 글귀, 숫자를 하나하나 그려 넣는 방법으로 1000환권 지폐 24장을 만들어 쓰다 기소됐다.
“피고인의 가련한 정상을 참작해 징역 1년을 선고한다.” 1961년 8월 4일 서울·경기지구 계엄고등군법회의에서는 위조지폐범 임 씨에게 당시 법이 허용한 최하 형량인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임 씨는 무엇 때문에 뛰어난 미술적 재능을 위조지폐를 만드는 데 써야 했을까. 》 ○ 젊은 여자 위폐(僞幣)범의 고백
“남편과 사별한 뒤 10여 년간 혼자 나를 키워온 홀어머니의 회갑이 한 달가량 앞으로 다가왔다. 어머니에게 쌀밥에 몇 가지 반찬이라도 만들어 조촐한 회갑 잔칫상을 차려드리고 싶지만 쌀을 살 돈이 한 푼도 없다.
어머니와 나는 남의 집 밭일과 바느질을 해주며 하루 400환 남짓한 품삯을 받아 하루하루 생활을 이어나갔다. 생활이라기보다 생존이었다. 어머니는 회갑을 한 달 앞둔 오늘도 뙤약볕에서 하루 10시간 이상 밭을 맨다. 어머니가 안쓰러워, 가난이 힘겨워 가슴앓이를 하다 4년 전 돈이 없어 학교를 휴학한 뒤 꺾어버렸던 붓을 다시 들었다. 그리고 어머니 몰래 그려 나갔다. 그렇게 한 달. 어두운 데서 보면 그럴 듯한 1000환짜리 10장이 쌓였다. 이 가짜 돈으로 쌀과 반찬거리 몇 가지를 사 우리 모녀는 단둘이 조촐한 회갑잔치를 열었다.
직접 그려 만든 돈의 효력은 곧 사라졌다. 같은 해 6월 다시 쌀이 떨어졌다. 나는 그린 돈 6장을 가지고 저녁 시장에 갔다가 눈 밝은 상인에게 덜미를 잡혔다. 한때 여류화백을 꿈꾸던 나는 영어의 몸이 되었다. 뼈아픈 가난은 유난히 뛰어나다던 재능을 위폐에 고스란히 담게 했다.”
○ 가난을 담은 위조지폐들
컬러복사기, 스캐너 등의 첨단 복사기기가 없었던 시절에도 위조지폐 사건은 끊임없이 일어났다. 당시에도 위폐 제조소를 만들어 놓고 대규모로 위조지폐를 찍어내던 간 큰 위폐 사범들이 있었다.
1958년 위폐를 제조하는 일당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경찰은 강원도 한 산기슭 마을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발견하고 그 근원지인 토막집을 덮쳤다. 인쇄기술자와 화공 출신 남성들로 구성된 위폐범 일당 8명은 이미 찍어낸 100환권 위조지폐 3만7000여 장을 토굴 안에 가득 쌓아둔 채로 수만 장을 더 찍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1961년에는 비밀인쇄 공장을 차린 뒤 위폐 용지만 5만 장을 준비해 놓은 일당이 잡혔다. 이미 찍어내 사용한 위폐는 10여 장이었다.
유흥비 마련을 위한 목적으로 위조지폐를 만들어 쓰다 붙잡힌 사람들도 있었다. 이모 씨(당시 22세)는 1965년 군대에서 휴가를 나온 친구와 500원짜리 위조지폐 3장을 만들어 노점상에서 술을 사다 경찰에 붙잡혔다. 이 씨 역시 미술학도 출신으로 그림 실력을 위조지폐에 잘못 써버렸다.
그러나 과거의 위폐 사건은 임 씨의 경우처럼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다 못해 위조지폐를 만든 ‘생계형 범죄’가 상당수였다. 당시 붙잡힌 위폐범의 대다수가 생계를 이어가기 힘들어 위폐를 만들었다고 진술했던 점, 큰 이익을 낼 수 있는 고액권보다 낮은 금액의 위폐나 조악한 위조주화(납으로 만들어 쉽게 일그러졌다)가 빈번히 발견됐던 점 등으로 미뤄 보면 당시 위조지폐·주화 범죄의 상당수가 생계형이었음을 알 수 있다.
1950년 전후 일본에서는 가난 때문에 한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합심해 위조지폐를 만들었다가 주민 모두가 실형을 선고받은 사건도 있었다. 이 사건은 2009년 개봉된 영화 ‘위조지폐’로 다시 한 번 세상에 알려졌다. 사진 기술자, 인쇄공, 교사, 전직 장교 등은 각자 제판, 종이 제작, 자금 조달 등으로 역할을 나눠 오랜 시행착오 끝에 1000엔권 지폐를 찍어내기에 이른다.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전문지식을 이용하고 펄프의 함량과 빛에 비춰 보면 나타나는 지폐의 숨은 그림(워터마크)을 넣는 법까지 연구해 겉보기에는 완벽한 위폐를 만들어냈다. “위폐 만드는 거 범죄라고 생각 안 해요. 위폐 때문에 사람이 죽나요? 돈만 있으면 뭐든 다 할 수 있어요. 먹고살고 학교도 갈 수 있어요. 우리가 만드는 건 어디까지나 진짜 돈입니다.” 가난해서 상급학교에 진학하지도 못하고, 아이들이 읽을 책이나 밥도 마련해주지 못했던 마을 어른들이 위폐를 찍어내며 스스로에게 걸었던 최면 같은 말이었다.
○ 유희·창조·기술 과시로 진화한 위폐
경찰청과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7년 3614건이었던 화폐 위·변조 사건 발생 건수는 지난해 7899건으로 크게 늘었다. 위조지폐 발견 역시 2004년 4353건에서 2006년 2만1939건으로 늘었다. 최근 위폐 방지 기술과 감별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적발된 위조지폐는 지난해 1만7장까지 줄어들긴 했다. 하지만 위폐 제조기술 역시 발달해 발견되지 않은 위폐가 더 있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실제 위폐 수는 통계 수치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와 달리 최근 위폐 사건의 상당수 범행 동기는 극도의 가난으로 보기 힘든 것들이다. 허경미 한국범죄심리학회 부회장(계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은 “예전에 일어났던 위폐 범죄 대부분은 연필 등 최소한의 도구를 사용해 지폐를 그리는 방식이었다. 그런 점에서 위폐 피의자 중 상당수는 어떠한 기기나 도구도 동원할 수 없는 빈곤층이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최근에는 컬러복사기나 복합기 등 정보기술(IT) 기기를 동원한 사건이 대부분인 것으로 볼 때 과거와 같은 ‘완전한 빈곤층’이 밥을 먹기 위해 위조지폐를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컬러복사기가 도입된 1990년대 이후 일어난 위조지폐 관련 사건의 면면을 보면 생계 때문에 위폐를 만든 경우는 거의 없다. 1997년에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 직원이 자신의 집에서 컴퓨터 스캐너와 컬러프린터를 이용해 10만 원권 자기앞수표 16장과 1만 원권 42장을 만들어 담배를 사다 경찰에 붙잡혔다. 최근에는 컴퓨터 판매회사에서 10여 년간 근무한 경력을 악용해 진폐 5만 원권 앞면에 복사한 5만 원권 뒷면을 붙이는 수법으로 현금자동입출금기(ATM)마저 무사통과하는 위폐를 만들어 쓴 4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그는 두 차례나 통화 위조 전과가 있었고, 직업을 가지지 않은 채 돈이 필요할 땐 스스로 만들어 생활했다.
최근에는 생계유지와 더욱 거리가 먼 청소년, 어린이들이 컴퓨터 관련 지식을 이용해 컬러 복사한 돈으로 담배나 술을 구입하다 경찰에 적발된 사례도 적지 않다. 2008년에는 초등학교 4, 5학년 학생 3명이 1만 원권의 앞면과 뒷면을 따로 복사해 풀로 붙여 만든 위조지폐로 호떡을 사먹다 붙잡혔다.
○ 모래알이든 바위든 모두 다 가라앉는다
희대의 화폐 위조범으로 불리는 미국의 아트 윌리엄스는 1996년 최첨단 위조 방지 기능을 적용한 새로운 지폐가 발행되자 끈질기게 위폐 제조기술을 연구해 1000만 달러(약 113억3500만 원) 상당의 위폐를 만들었다.
미국에서는 고객이 100달러짜리 지폐를 내면 점원이 굵은 사인펜을 꺼내 돈 위에 선을 그어본다. 이른바 드라이마크 펜. 이 펜의 잉크는 종이의 필수 성분인 전분과 반응하면 검은색으로 변한다. 하지만 달러화 지폐를 만드는 원료에는 전분이 사용되지 않아 잉크의 색이 변하지 않는다. 진짜 같은 위폐를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이던 윌리엄스는 보이는 종이마다 드라이마크 펜으로 선을 그어봤다. 온갖 시행착오를 거듭하던 그는 드디어 특정 회사가 만드는 전화번호부 용지에 드라이마크 펜을 댔더니 색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이 종이를 구해 대량으로 위폐를 만들기에 이른다. 그러곤 위폐를 마약거래를 하는 시카고 갱들에게 싼값에 팔아넘겼다. 2007년 검거돼 징역 7년형을 선고받기는 했지만 1000만 달러라는 위폐 액수는 미국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전문가들은 아직 우리나라에 윌리엄스 같은 위폐범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해서 안심할 일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유치한 수준이긴 하지만, 화폐의 권위를 쉽게 무시하고 돈을 만드는 ‘호떡 초등학생’ 류의 사건이 늘게 되면 화폐에 대한 신뢰가 서서히 무너지기 때문이다. 조악하나마 화폐를 ‘스스로’ 만들어 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훗날 아트 윌리엄스 같은 ‘거물’이 등장하는 토양이 될 수도 있다.
현재 100만 장당 위폐가 50∼100장가량 발견되는 달러화 및 유로화 위조지폐에 비하면 원화 위폐 발생률(2010년 기준 2.4장)은 현저히 낮다. 그러나 바로 지금이야말로 초정밀 원화 위폐 탄생을 막고 미세한 균열을 초기에 막을 적기라는 지적이다.
“돈을 만들 때 너무 재밌었습니다. 진짜든 가짜든 지폐란 그냥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겁니다.” 영화 ‘위조지폐’에서 아이들에게 책과 먹을 것을 사주기 위해 위폐를 만든 교사 가게코의 말이다. 명분이 어떠하든 가게코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경제 근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생긴다. 한 번 생긴 균열은 미세하더라도 되돌리기 어렵다.
김성용 한국은행 발권정책팀 차장은 “규모와 상관없이 위조지폐는 국가 경제에 큰 혼란을 일으킨다”며 “모래알이든 바윗덩어리든 가라앉는 건 마찬가지 아니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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