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요리사’인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藤本健二·66) 씨가 지난달 21일 방북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를 만나고 온 뒤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22일 일본 TBS 방송에 출연해 북한에서 김정은과 포옹하는 장면 등 사진 8장을 공개하며 김정은과 부인 이설주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사진은 김정은 부부가 후지모토 씨를 위해 평양에서 마련한 환영회 때 찍은 것들이다. 후지모토 씨는 23, 24일에도 같은 방송에 출연해 각각 ‘김정은의 초대 이유’와 ‘북한에 두고 온 가족과의 재회’에 대해 입을 열 예정이다. 후지모토 씨의 22일 발언과 사진 8장을 통해 11년 만에 김정은과 다시 만난 상황을 재구성했다. 그는 내내 김정은을 ‘대장동지’라고 호칭했다.
7월 말 평양의 한 연회장. 나는 김정은을 기다리고 있었다. 초조했다. 여전히 신변의 위협도 느껴졌다. 드디어 김정은이 들어왔다. 나를 보자마자 “후지모토 상(さん·씨)”이라고 불렀다. 김정은이 내 이름 뒤에 ‘상’을 붙인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1989년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가 됐을 때부터 당시 5세였던 그의 ‘놀이 상대’였다. 그 후 함께 숨어서 담배를 피울 정도로 친해졌다. 하지만 2001년 김정은을 배신하고 북한을 뛰쳐나왔기에 항상 두려웠다. 내 이름에 ‘상’을 붙여준 걸 들으니 안심이 됐다.
나는 김정은과 포옹을 했다. 그는 나보다 38세나 어리지만 키는 머리통 하나만큼 더 컸다. 그의 가슴에 파묻혀 거의 울다시피 했다. 과거 함께했던 시절의 그리움이 밀려왔고, 신변 안전에 대한 안도감도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배신자 후지모토가 돌아왔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김정은은 “됐어, 됐어. 배신한 것은 다 잊었어. 같이 제트스키와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테니스 농구를 한 것을 잊을 수 없다. 담배 피운 것도 잊을 수 없다. 어렸을 때부터 놀아줘서 고맙다. 앞으로 일본과 북한을 왔다 갔다 해도 좋다”고 말했다.
김정은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 말로만 대장동지를 만났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는다”고 했더니 흔쾌히 동의했다. 북조선 사람이 환영회 내내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다. 그는 인화까지 마친 뒤 사진 8장을 골라 줬다. 김정은도 이 사진이 공개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와도 만나 악수했다. 당시 옆에 있던 북조선 사람이 “새 사모님”이라고 안내했다. 김정은이 두 번째 결혼을 한 게 아니라 김정일의 부인 고영희가 아니라는 의미로 말한 것 같다. 이설주는 나에게 “우리 국가에 잘 오셨습니다. 마음 깊이 감사합니다. 최고사령관(김정은)은 항상 후지모토 상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설주는 정말 멋진 사람이다. 환영회 내내 말은 많이 하지 않았다. 이설주는 두 손으로 나의 손을 잡고 악수했지만 나는 한 손만 사용했다. 너무 긴장돼 땀을 많이 흘렸기 때문에 다른 한 손은 손수건을 들고 있었다. 큰 결례를 범했다.
환영회 테이블 중간에 김정은 부부가 앉았고 그 맞은편에 내가 앉았다. 내 왼쪽에는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오른쪽에 통역이 앉았다. 김정은은 통역을 “사쿠라”라고 불렀다. 그는 일본에 대해서는 일절 이야기하지 않았다. 내가 일본인 납치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도 별 말 없이 “응, 응” 하며 듣기만 했다. 나머지 나눈 이야기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술에 취해 숙소에 겨우 돌아갔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나를 찾는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은 6월 16일. 오전 8시 반경 일본의 한 편의점에서 낯선 사람이 다가오더니 메모를 건넸다.
‘북한의 아내와 딸이 보고 싶어 한다. 그리고 또 한 사람(김정은)이 만나고 싶어 한다.’
깜짝 놀랐다. 나는 1989년부터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로 일했지만 2001년 아내와 딸을 북한에 남겨두고 혼자 탈북했다. 그 후부터 항상 암살 우려에 시달렸다. 그 때문에 집 주소를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고, 외출할 때는 항상 두건과 선글라스를 착용했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남자는 옛이야기를 했다. 내가 북한에서 탔던 BMW 차량, 다녔던 길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나의 BMW 옆자리에 탔었다고도 했고, 고려호텔에서 술도 한잔했단다. 가만히 보니 얼굴이 기억났다. 그가 보낸 메시지도 믿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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