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학교폭력과 왕따가 완전히 없어지는 날, 과연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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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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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형 외톨이 A 양의 이야기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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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형 외톨이’가 심각한 사회문제다. 최근 서울 여의도에서 전 직장동료에게 흉기를 휘두른 사건, 울산에서 슈퍼마켓 여주인에게 칼부림을 한 사건, 지하철 1호선 의정부역에서 불특정 다수 승객들에게 공업용 커터를 휘두른 사건의 공통점은 가해자가 모두 은둔형 외톨이였다는 점이다.

은둔형 외톨이 문제는 청소년에겐 더욱 심각하다. 최근 통계는 없지만 2005년 청소년위원회에 따르면 은둔형 외톨이 위험군인 고교생만 해도 전체의 2.3%인 4만 3000명으로 추산된 바 있다.

여기 1년 동안 은둔형 외톨이로 살다가 최근 다시 세상과 힘겨운 소통을 시작한 A 양의 이야기를 통해 한 발랄한 여중생이 은둔형 외톨이로 전락하기까지의 과정을 들여다보자.

2010년 중학교에 입학한 A 양의 반에는 ‘왕따(집단따돌림)’를 당하는 친구가 있었다. 성격이 활발하고 누구와도 잘 지냈던 A 양은 왕따인 친구와도 친하게 지냈다. 그러자 같은 반의 이른바 ‘좀 노는 아이’인 B 양과 그 친구들이 A 양을 왕따시키기 시작했다. 왕따인 친구와 친하게 지낸다는 이유였다.

A 양은 용기를 내어 담임교사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A 양의 말을 전해들은 담임교사는 곧바로 B 양과 친구들을 불러 주의를 줬다. 누가 봐도 A 양이 선생님에게 말했다는 사실을 알 만한 상황이었다. 일진의 보복이 두려웠던 A 양은 이후 일주일 동안 학교를 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계속 학교를 결석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학교에 다시 나갔다.

A 양은 “얼마나 힘들었니”라고 다독여 주는 담임교사의 모습을 상상하며 등교했지만 담임교사로부터 돌아온 말은 “무책임하다”는 다그침이었다. 친구들을 두려워해서 학교에 나오지 못한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보다는 결석한 사실 자체만 두고 나무라는 선생님이 야속했다. 이후 평소 기타를 좀 치던 A 양은 친구들과 잘 지내보고자 주도적으로 학교 내 작은 밴드를 만들어 활동했다. 그리고 학기 말이 되었다.

A 양에게 친구들이 다가왔다. A 양을 주도적으로 왕따시켰던 B 양을 함께 왕따시키자고 A 양에게 제안했다. A 양은 생각했다. ‘친구들과 아무리 친하게 지내더라도 누구라도 한순간에 왕따를 당할 수 있겠구나….’ A 양에겐 그때부터 교우관계에 대한 허무한 감정을 넘어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중1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개학 후 다시 학교에 나갈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했다. 누구든 목표를 한 명 정해 왕따를 시키려는 데 혈안이 된 친구들, 자신에게 영 무관심한 선생님을 다시 만날 생각을 하자 학교에 가기가 싫었다.

2학기가 시작되었고 A 양은 등교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종일 일을 해야 했고 어머니와 이혼한 아버지는 따로 살았기에 A 양에겐 대화할 가족이 없었다. 학교에 나가지 않자, 친구들을 만나는 일이 더욱 싫고 무섭게 느껴졌다. 괜히 집 밖으로 나갔다가 학교 친구들과 마주칠까 봐 두려웠다. 이때부터 A 양은 집 밖에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으면서 아침이건 낮이건 밤이건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났다. 깨어있는 시간에는 종일 컴퓨터를 했다. 노래를 듣거나 동물에 관한 인터넷 홈페이지를 둘러보는 게 일과였다. 매일 방에 틀어박혀 라면만 먹었다.

2학기 어느 무렵인가, 학교를 다녀온 어머니는 “이젠 학교를 안 나가도 된다”고 했다. 자퇴인지 퇴학인지 A 양은 알지 못했다. “공부를 못하면 인생 낙오자가 된다”는 아버지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A 양은 평소 아버지로부터 “너를 동물 조련사 시키려고 공부시킨 거 아니다” “공부 못하면 몸 쓰는 일을 해야 해서 아빠처럼 몸이 아프게 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은둔형 외톨이로 지낸 지 1년이 지났다. 가족은 A 양에게 학교에 다시 가라고 권했다. 하지만 A 양은 “나를 학교에 다시 보낼 거면 차라리 정신병원으로 보내라”며 맞섰다.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A 양은 우울증 판정을 받고 3개월간 입원했다.

지난해 10월 A 양이 퇴원할 무렵, 한 복지사가 ‘유유자적 살롱’(유자살롱)에 가보라고 권유했다. 유자살롱은 은둔형 외톨이 청소년들에게 밴드활동 등 음악을 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사회와의 소통을 다시 원활히 하도록 돕는 사회적 기업.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을 만날 일이 스트레스였지만 기타를 제대로 배우고 싶은 마음에 용기를 내었다. 다니다 보니 점점 음악 이상으로 함께하는 사람들이 좋아졌다.

A 양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곳의 사람들은 A 양의 말에 공감해주고 “공부만 잘해야 한다는 말이 모두 맞는 건 아닐 수 있다. 네가 직업을 갖고 일하는 10년 후에 일어날 일은 아무도 단정할 수 없는 것”이라며 격려해주었다. 현재 A 양은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거나 일상생활을 하는 데 지장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A 양은 “아직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A 양은 최근 중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도 있지만 그는 고등학교도 검정고시로 졸업하려고 학원에 다닌다.

“일진이나 왕따를 시키는 친구들을 다시 만날까 봐 두려워요. 요즘 학교폭력이 조금 줄었다고는 하지만 학교폭력과 왕따가 완전히 없어지기 전까지는 절대로 학교에 가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그런 날이 과연 올까요?”(A 양)

이영신 기자 ly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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