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호 태풍 ‘산바’가 17일 한반도를 관통하면서 일부 지역에 800mm가 넘는 비를 뿌리고 최대 순간풍속 초속 40m 이상의 강풍을 기록했다. 특히 ‘볼라벤’ ‘덴빈’에 이은 3연속 태풍으로 곳곳의 지반이 약해진 탓에 산사태 피해가 잇따랐다. 하루 중 바닷물의 수위가 가장 높은 만조 때가 겹쳐 해일 피해도 컸다.
○ 산사태·침수 피해 잇달아
이날 오후 1시 25분경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산리에서는 산사태가 주택을 덮쳐 이모 씨(53·여)가 숨졌다. 경북 경주시 안강읍 대동리에서는 야산에서 쏟아져 내린 흙더미가 근처 주택과 축사를 덮쳐 2명이 매몰됐다가 구조됐다. 경남 함양군 수동면 88고속도로 확장구간의 절개지 2곳에서는 토사가 도로로 쏟아져 내리면서 승용차 버스 등 차량 10여 대가 지방도로로 밀려나거나 고립됐다.
해안가에서는 해일로 인한 피해가 컸다. 태풍의 이동경로 근처였던 전남 여수와 광양의 경우 주택 및 농경지 침수가 속출했다. 여수시 만흥동의 명소인 만성리 검은모래해수욕장에서는 수만 t의 검은 모래가 해안으로 올라와 공사장을 방불케 했다. 해변의 횟집 등은 처참하게 부서지거나 해일로 밀어닥친 바닷물에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다. 경남 창원과 통영의 저지대와 항구 일대에도 강한 비바람에 만조가 겹치면서 바닷물이 넘쳐 어시장과 해안도로 등이 잠겼다.
낙동강 상류에 집중호우가 내려 하류에는 6년 만에 홍수경보가 발령됐다. 이날 오후 9시 현재 낙동강 삼랑진 수위는 홍수경보 수위인 7m를 훌쩍 넘긴 7.86m를 기록했다. 한때 홍수경보가 발령됐던 경북 포항 형산강 하류 수위는 오후 6시 현재 2.78m로 낮아져 홍수특보도 홍수주의보로 대체됐다.
강원 동해안 지역도 피해가 컸다. 시간당 20mm 안팎의 강한 비가 내린 데다 최대 순간풍속 초속 20∼30m의 강한 바람까지 불었다. 시간당 20∼30mm의 폭우가 내린 강릉과 삼척에서는 도심 곳곳이 침수되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강릉시 교동의 한 아파트 옥상에 있던 가로 30여 m, 세로 10여 m 크기의 함석지붕이 강풍에 떨어져 차량 10대가 파손되기도 했다.
○ 동북아 ‘태풍의 길’ 바뀌나
산바는 올해 들어 한반도에 상륙한 4번째 태풍으로 한 해 동안 4개의 태풍이 한반도에 진입한 것은 50년 만의 기록이다. 과거 1914년과 1925년, 1933년에 4개의 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했고, 가장 최근인 1962년에는 조앤 노라 오펄 에이미 등 4개가 상륙했다. 올해도 볼라벤 덴빈 산바가 연속으로 상륙했고 앞서 7월 중순 카눈이 수도권을 관통했다. 7월 하순 제주 남쪽 해상을 지나간 담레이를 감안하면 올해만 5개의 태풍이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쳤다.
태풍은 평년 기준으로 9월까지 18.4개, 연말까지 25.6개가 발생하고 3.1개가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친다. 올해의 경우 현재까지 16개가 발생해 평년과 비슷하지만 벌써 5개가 영향을 줬다. 반면에 올해 발생한 태풍 가운데 일본 본토에 상륙한 것은 6월 중순 구촐뿐이다. 최근 3년간 발생한 태풍을 봐도 한반도에 상륙한 태풍은 8개나 되지만 일본에 상륙한 것은 4개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동북아시아 태풍의 길이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바뀌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기상청은 “태풍은 북태평양고기압 가장자리를 타고 이동하는데 올해는 고기압 세력이 확대되면서 한반도로 향하는 일이 많았다”며 “앞으로 기후변화에 따라 우리나라가 과거보다 태풍의 영향을 더 많이 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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