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전 주중 일본대사관이 있는 베이징(北京) 량마차오(亮馬橋)로.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대학 3학년생 셰(謝·21)모 씨는 반일 시위에 참가하려고 안후이(安徽) 성 허페이(合肥)에서 기차를 타고 13시간을 달려왔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과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군에 지원하겠다. 차라리 전쟁으로 해결하면 좋겠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함께 왔다는 동급생들이 일제히 ‘보위(保衛)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 열도)’를 외치며 마오쩌둥(毛澤東) 사진을 붙인 피켓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혁명기의 청년들을 보는 듯했다.
○ 중국의 패권 외교에 불안한 주변국
4월부터 불거진 댜오위다오 분쟁 초기만 해도 중-일 간 대결국면은 설전(舌戰) 수준에서 그칠 것이라는 게 국제사회의 대체적인 전망이었다. 하지만 중국은 14일 해양감시선 6척을 댜오위다오 영해에 진입시킴으로써 ‘행동 대 행동’의 의지를 과시했다.
4월 필리핀과 난사(南沙) 군도를 둘러싼 갈등을 빚을 때도 중국은 두 달 가까운 해상 대치로 맞섰다. 중국은 7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이 마련한 남중국해 행동수칙(Code of conduct)을 거부하는 강수를 뒀다.
올해 들어 중국이 보여준 외교 정책의 방향은 핵심이익 포기 불가와 아시아 종주국 지위 회복으로 요약된다. 특히 일본 및 동남아 국가와의 갈등의 근저에는 미국의 태평양 회귀 시도 자체를 차단하기 위해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더 완고한 태도를 견지한다는 반접근(anti-access) 및 접근 거부(area denial) 전략이 깔려 있다.
중국 외교의 이런 흐름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본격화되고 있다. 세계 경제의 구원투수로 나선 데 따른 자신감 등을 바탕으로 그동안 숨겨온 발톱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켄 리버탈 연구위원은 “중국 외교가 갑자기 강경해진 측면이 있다. 이에 불안해진 주변국들이 미국의 보호를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민족주의 교육의 세례를 받은 ‘바링허우(80後·1980년 이후 출생자)’들이 정부의 강경 대응을 촉구하면서 거친 외교가 만성화되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 ‘경제 총구’에서 나오는 외교 권력
마오쩌둥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다. 현재의 중국이 휘두르는 아시아 지역 내 외교 권력은 경제 총구에서 나오고 있다.
남중국해 분쟁 당시인 5월 중국은 필리핀에 대해 여행 취소와 농산물 수입 검역 강화 카드를 빼들었다. 센카쿠 열도 분쟁을 벌이는 일본에도 경제적 위협을 가하고 있다.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는 17일 일본을 겨냥해 “중국이 경제 방아쇠를 당기면 일본은 20년 후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실 중국이 1978년 개혁 개방 이후 연평균 9.9%의 경이적인 성장률을 기록한 건 주변국과 촘촘하게 엮은 경제 네트워크 덕분이다. 아시아 각국도 중국을 생산기지 겸 수출 대상국으로 삼아 동반성장의 과실을 누려왔다. 하지만 2010년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이후 주변국이 포함된 거대 중화경제권은 외교적 덫으로 변하고 있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12개국(북한과 부탄 제외)과 한국 일본 가운데 중국과의 무역 비중이 20%를 넘는 곳은 7개국이다. 반면 중국의 무역 의존도는 한국 일본 인도 러시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6개국을 제외하면 모두 1% 미만이다. 그나마 6개국의 대중 무역 의존도는 중국의 이들 나라에 대한 무역 의존도보다 크게 높다. 이런 비대칭적인 구조가 중국의 경제 패권을 강화해 주는 요소이다.
문제는 중국이 자유무역을 기본정신으로 하는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음(2001년)에도 불구하고 언제든지 주변국을 겨냥해 경제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는 것이다. 말레이시아 일간지 ‘스타뉴스’는 17일 “일본 경제는 중국의 경제 제재에 면역력이 없다”며 중국의 대응을 우려했다. 인도 일간지 ‘더 힌두’도 이날 베이징의 시위 현황을 보도하며 중국의 경제 보복 조치 가능성을 집중 부각했다. ○ 새로운 지도부의 다음 수순은
올가을 중국은 10년 만에 권력을 교체한다. 다만 외교 정책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여에서 야로 정권이 넘어가는 게 아니라 공산당 내에서 권력 주체만 바뀌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건은 기존 외교 기조의 강약이 어떻게 조절되느냐다.
중국 외교정책은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의 평화공존 5원칙(1955년)에 이어 독립외교노선(1982년), 신안보관(1996년), 화평발전론(2004년)으로 바뀌면서 외부 불간섭에서 제한적인 개입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왔다. 중국의 외교 브레인으로 통하는 옌쉐퉁(閻學通) 칭화대 국제문제연구소장 등은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감춰 밖으로 새지 않도록 하면서 은밀하게 힘을 기른다)는 고립주의자들의 변명에 불과하며 평화적 굴기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시대 중국의 외교도 내부 모순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서라도 이 같은 노선을 취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아직 2008년 이후 ‘주요 2개국(G2) 질서’에 상응하는 외교정책을 수립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적지 않아 당분간은 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흥규 성신여대 교수는 “중국은 상대방을 떠보고, 그 반응에 따라 행보를 수정하다 다시 문제가 생기면 이를 조정하는 식의 외교 정책을 취하고 있다”며 “군부와 경제 부문 등이 요구하는 외교 목표를 수렴해 체계화한 외교 전략과 비전은 아직 없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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