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후보의 첫 행보 콘셉트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의 ‘차별화’였다. 정치권에선 안 후보의 선공(先攻)으로 두 후보 사이에 야권후보 단일화 내전의 신호탄이 올랐다는 관측이 나왔다.
20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한 안 후보는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전 대통령과 박태준 전 총리 묘역을 찾아 참배했다. 민주당 후보로 선출된 다음 날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만 찾았던 문 후보와 대비되는 ‘화합’ 행보였다. 안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가 있는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방문도 검토하고 있다.
문 후보는 이날 당 지도부와 회동을 갖고 “당의 단결과 쇄신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전날 안 후보가 단일화의 조건으로 사실상 ‘민주당 쇄신’을 요구한 데 대한 화답의 성격도 있다.
○ 安, 문재인부터 잡아라
안 후보가 이날 세 명의 전직 대통령 묘역을 찾아 모두 참배한 것은 전날 대선출마 기자회견에서 강조한 ‘통합’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다. 박 전 총리 묘역까지 찾은 데 대해 안 후보 측은 “산업화 과정에서 중요한 상징이고 기여한 바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포스코 이사회 의장을 지낸 안 후보는 지난해 11월 박 전 총리 별세 때 조문도 했다.
그는 세 전 대통령과 박 전 총리 묘역의 방명록에 모두 “역사에서 배우겠습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현충원 방명록에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변화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썼다. 안 후보는 사병 묘역도 참배했다.
이후 안 후보는 “박정희 시대 권력의 사유화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박근혜 후보의 역사인식을 겨냥한 동시에 박 후보의 역사인식을 공격하고 있는 문 후보의 지지층도 흡수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국민과의 직접 소통이란 의미도 있다.
안 후보는 오후엔 서울대를 방문해 오연천 총장에게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및 교수 사직서를 제출했다. 오 총장과의 면담 직전 ‘봉하마을에 가시나’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안 후보는 “검토해 보고 결정되면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안 후보는 이후 경기 성남시 판교에 있는 안랩을 방문해 임직원 200여 명 앞에서 “더 큰 소명을 위해 떠날 수밖에 없다. 제가 가졌던 모든 추억과 마음까지도 정리해야 할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 文 보란듯… 산업화-민주화 모두 끌어안는 安 ▼
안 후보의 ‘화합’과 ‘새 정치’ 메시지는 기존 정치권 전체에 대한 차별화 시도로 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문 후보를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친노(친노무현) 이미지가 강한 문 후보의 약점을 정확히 찔렀다는 것. 안 후보가 1차 타깃을 단일화 대상인
문 후보로 정하고 치밀한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전날 안 후보가 노무현 정부에 대해 “재벌의 경제 집중,
빈부격차 심화, 그건 굉장히 큰 과(過)”라며 아프게 비판한 것 역시 민주당 내 비노(비노무현) 세력을 의식한 발언이라는 관측도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계인 박선숙 전 의원이 이날 민주당을 탈당해 안 후보의 선거총괄역을 맡은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안 후보 측 김민전 경희대 교수는 라디오에서 “이제 공은 민주당 쪽으로 넘어갔다. 4·11총선에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한 민주당의
신패권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친노 그룹을 정조준한 공격적 발언이다. 금태섭 변호사도 라디오에
출연해 ‘후보 단일화 조건과 (민주당) 입당 조건이 동일한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안 후보는 전날 ‘정치권의
변화와 혁신, 그리고 국민적 동의’를 단일화의 조건으로 내걸었다. 조건이 맞으면 입당할 수도 있다는 얘기였지만, 그보다는 정치
쇄신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금 변호사는 “민주당 쇄신이 없을 경우 당연히 완주를 생각하고 있다”는 취지로 민주당을 압박했다.
○ 지지층 결집으로 맞서는 문재인
문 후보는 안 후보 측의 공세에 맞서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을 최대한 결집하고 당 쇄신과 정책 행보를 통해 외연을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후 이날 처음으로 당 지도부와 조찬 회동을 가진 문 후보는 “단결과 쇄신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쇄신’보다 ‘단결’을 앞에 세워 그가 집단속에 나섰다는 관측이 나왔다.
문 후보는 이날 열린 의원총회에선 “조기 단일화를 촉구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안 후보의 페이스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의미다.
또 안 후보가 민주당의 혁신을 주문한 것을 의식한 듯 “당이 제대로 변화하면서 경쟁하기만 하면 단일화 경쟁에서도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했다. 문 후보 경선캠프의 공동선대본부장을 맡았던 이상민 의원은 라디오에 출연해 “단일화 자체가 정치 쇄신”이라며
단일화 조건을 내건 안 후보를 겨냥했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안 후보가 요구한 민주당 쇄신에 문 후보가 화답하는
형식이 돼버려 안 후보에게 단일화 주도권을 빼앗길 우려가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한 중진 의원은 “문 후보가 대선후보로 선출된
직후 쇄신 대상으로 지목된 이해찬 대표 문제부터 손을 댔어야 한다. 실기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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