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쇼핑 MD 수억대 뒷돈… 조직 비리 가능성

입점-황금시간 배정 미끼 협력업체서 4억 받은 1명 구속
공무원인 父, 공모 여부 수사

상품기획자(MD·merchandiser)는 ‘유통업계의 꽃’이라 불린다. 제조사한테 MD는 ‘하느님과 동격’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아무리 좋은 상품이라도 MD가 발굴해 주지 않으면 판매 기회조차 얻을 수 없다.

검찰이 국내 한 TV홈쇼핑 업체의 전직 MD가 협력업체들에 ‘입점시켜 주겠다’며 수억 원의 뒷돈을 가로챈 혐의를 잡고 수사에 나섰다. 검찰이 홈쇼핑 MD를 겨냥해 수사하는 것은 처음이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 박근범)는 N홈쇼핑 입점을 원하는 건강식품업체 4곳과 사은품업체 3곳에서 총 4억2000여만 원을 받아 챙긴 혐의(배임수재)로 N홈쇼핑 업체 전 MD 전모 씨(32)를 구속했다고 24일 밝혔다. 전 씨는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자 올 7월 5년간 근무하던 이 회사에 사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전 씨는 ‘홈쇼핑에서 제품을 팔거나 황금시간대에 프로그램을 배정해 주겠다’며 업체들로부터 돈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첩보를 입수하고 이달 초 전 씨의 집을 압수수색해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검찰은 전 씨가 입점 업체들로부터 받은 돈을 윗선에 상납했는지, 다른 MD들이 연루됐는지도 파악하고 있다. TV홈쇼핑에 입점하기 위해서는 꼼꼼한 내부 검토 절차를 거치는 만큼 MD 혼자 업체를 잘 봐주기는 힘든 구조라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일반적으로 입점을 희망하는 업체가 담당 카테고리의 MD에게 입점 신청서를 내면 MD는 상위 담당자와 상품을 홈쇼핑에서 판매해도 좋을지 검토 절차를 거친다. 행여 상품이 통과됐더라도 좋은 시간대에 배정해 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편성담당자의 몫이다. 이 때문에 검찰은 조직적인 비리가 있었을 가능성도 열어두고 수사 중이다.

검찰은 또 전 씨와 주변 사람의 계좌를 추적하다가 식품의약품안전청 공무원인 전 씨 아버지의 계좌에서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해 식약청 사무실과 자택도 함께 압수수색했다. 전 씨 아버지는 식약청 위해사범중앙조사단 팀장으로 근무하다 최근 검찰 수사 대상에 올라 직위 해제됐다. 하지만 전 씨 아버지가 별도로 식품업체들로부터 뒷돈을 받았는지, 아들 전 씨가 아버지 계좌를 빌려 업체들로부터 돈을 받은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다른 홈쇼핑 업체들도 비슷한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수사 도중 단서가 나온다면 다른 홈쇼핑 업체들로 수사를 확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