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는 ‘정치인’보다 ‘변호사’라는 직함으로 더 오랜 세월을 보냈다. 1982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합동법률사무소를 개업한 그는 부산·경남에서 인권·노동 변호사로 명성을 떨쳤다. ‘정치인 문재인’이 주목받은 배경에는 그가 ‘힘들고 돈 안 되는’ 사건을 마다하지 않은 재야 변호사였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
○ 사측 고문변호사 이력 논란
문 후보는 1980년대 후반 노동자 해고 사태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풍산금속의 사측 고문변호사였다. 풍산 노동자 해고 사태는 경찰이 1989년과 1990년 각각 풍산 안강공장과 동래공장에 투입돼 노조 결성에 나선 노동자들을 구속한 사건이다. 이들은 노조 활동을 이유로 해고됐다. 이후 2007년 민주화운동 관련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가 풍산 해고 노동자 31명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지만 복직은 되지 않은 상태다.
2008년 4월 공공노조 소속 이정호 씨는 진보좌파 인터넷매체 ‘참세상’에 기고한 ‘풍산 해고자에게 문재인과 노무현은?’이란 칼럼에서 문 후보가 1990년 풍산 동래공장 파업 당시 사측 변호를 맡았다고 소개했다. 1990년 9월 경찰의 동래공장 진압 직후 열린 노동자 집회에서 문 후보가 정의헌 당시 부산노련 의장에게 귀엣말로 “노변(노무현 변호사)께서 풍산의 자문변호사라서 저희가 사측 변호를 맡을 수밖에 없다. 양해해 달라”고 했다는 것. 정 전 의장은 24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20여 년 전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 후보 측은 “법률사무소가 풍산금속과 고문 계약을 맺을 때 ‘노동자를 상대로 한 소송은 맡지 않는 것’을 전제로 했다”며 “문 후보가 고문변호사였던 건 맞지만 노동자를 상대로 사측을 변호한 적은 결코 없었다”고 반박했다. 문 후보가 과거 정 전 의장에게 했던 말에 대해서는 “풍산금속 고문을 맡고 있어 노동자들의 변론을 못해 주는 게 미안하다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 노 정권 때 법무법인 ‘부산’ 매출 껑충
문 후보는 4·11총선 직전까지 ‘법무법인 부산’의 대표변호사로 있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한 뒤인 1990년 정재성 변호사와 동업을 했고 1995년 법무법인 부산을 설립했다. 정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 누나의 사위다. 문 후보는 노무현 정부 5년을 제외하고 17년간 ‘부산’의 대표변호사였다. 2003년 공직자 재산 공개 당시 ‘부산’의 지분 25%를 갖고 있었으나 2004년 재산 공개에서는 모두 양도했다고 밝혔다.
노무현 정부 시절 ‘부산’의 매출은 단기간에 뛰었다. 이를 두고 정권 실세였던 문 후보를 의식한 ‘현관예우(現官禮遇)’가 아니냐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새누리당 이종혁 전 의원에 따르면 ‘부산’의 연간 매출액은 2002년 13억4900만 원에서 2005년 41억 원으로 3년 만에 세 배 가까이로 늘었다. 문 후보는 2003년 2월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됐다. ‘부산’은 2005년 사건 수임 건수 전국 랭킹 2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끝난 2009년엔 매출액이 다시 14억3000만 원으로 떨어져 ‘정권 프리미엄’ 이전 상태로 돌아갔다.
정 변호사는 24일 “문 후보는 청와대 재직 당시 법무법인 부산의 구성원이 아니었는데 매출 증가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 2007년 법무법인, 공기업과 고문 계약
문 후보가 대통령정무특보이던 2007년 2월 16일 법률신문은 법무법인 부산이 고문 계약을 체결한 기업으로 대한주택공사, 무학, SK, 포스코건설, 한국투자증권, 한국증권선물거래소, 부산도시가스, KT서브마린 등이 있다고 보도했다. 공기업은 정부의 직접적인 영향력 아래에 있고 대기업도 정권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여러 공기업과 대기업이 정권의 실세이던 문 후보를 보고 ‘부산’과 고문 계약을 체결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정 변호사는 “기업 상당수가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기 전부터 고문 계약을 맺었다”며 “법무법인의 정당한 업무 활동을 문제 삼아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요즘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올케인 서향희 변호사가 2010년부터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법률 고문을 맡아온 사실을 비판하는 것과 같은 잣대를 들이댄다면 법무법인 부산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민주당은 서 변호사가 박 후보의 영향력에 기대 공기업까지 활동 영역을 확대했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의혹은 문 후보가 대통령민정수석으로 있던 2003년 당시 유병태 금융감독원 비은행검사 1국장에게 ‘부산저축은행 문제를 신중히 처리해 달라’는 내용의 전화를 걸었다는 것이다. 이를 놓고 저축은행 퇴출과 관련한 청탁성 전화가 아니냐는 논란이 벌어졌다. 이 의혹은 새누리당 이종혁 전 의원이 3월 “문 후보가 대표변호사로 있던 법무법인 부산이 2004∼2007년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59억 원의 사건을 수임했다”며 “당시 전화가 청탁 로비의 대가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면서 불거졌다.
‘59억 원 수임’과 관련해 법무법인 부산은 “법무법인 ‘국제’에서 건당 10만∼20만 원짜리 저축은행 부실채권 처리 민사소송을 수임했는데, 건수가 워낙 많아 나누자고 제안한 것”이라며 “매출액이 수입과 크게 연결된 것도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부산’은 이 전 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부산지검에 고발했지만 8월 말 부산지검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유병태 전 금감원 국장은 참고인 조사에서 “문 후보에게서 전화를 받았지만 청탁이나 압력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 ‘공천헌금 수수’ 서청원 전 대표 변호
문 후보는 2008년 말 공천헌금 수수 혐의로 기소된 서청원 전 친박연대 대표의 변호인으로 참여했다. 이에 대해 문 후보는 “변호사는 정당한 사유 없이 사건을 거부하면 변호사법에 위반된다”고 해명했다.
‘인권 변호의 메카’로 통하던 법무법인 부산은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기 전 유흥주점에 대한 취득세 중과세가 위헌이라는 결정을 받아내기도 했다. 문 후보가 대표변호사이던 시절이다. 정 변호사는 “법률에 위헌 소지가 있어 소송을 맡았다. 유흥주점 운영자도 인권이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검증팀
▽정치부=조수진 이남희 장원재 홍수영 손영일 기자 ▽사회부=윤희각 이성호 김성규 조건희 기자 ▽산업부=정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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