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자녀가 부모를 평가한다는 것, 더구나 공개적으로 과오를 지적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기자회견 초반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고뇌의 시간’ 끝에 ‘한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 아닌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로서 자신을 둘러싼 역사인식 논란에 응답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점을 밝히는 대목이었다. 한마디 한마디 목에 힘을 주어 말을 전달하고 있었지만 회견이 끝날 때까지 박 후보의 눈은 젖어 있었다.
24일 오전 9시 서울 여의도 당사 기자실을 찾은 박 후보는 다소 상기된 얼굴로 바로 단상에 올랐다. 박 후보의 앞에는 투명한 유리판에 원고를 보여 주는 프롬프터(자막 재생기)가 세워져 있었다. 그는 과거사 관련 발언의 민감성을 의식한 듯 약 9분 동안 투명 프롬프터에 뜬 준비된 원고를 그대로 읽어 내려갔다.
박 후보는 “국민께서 제게 진정 원하시는 것이 (박 전 대통령의) 딸인 제가 아버지 무덤에 침을 뱉기를 원하는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감정을 참는 듯 박 후보의 목소리엔 과도한 절제가 묻어났고, 주변은 숙연해졌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장인의 좌익 전력이 거론됐을 때 “내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라고 한 발언을 연상시키는 대목이었다.
회견 시점은 박 후보가 23일 오후 최종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24일 부산에서 첫 지역 선거대책위원회 발대식이 있는 등 당이 본격적인 대선 체제로 전환되는 만큼 이전에 과거사 문제를 매듭지어야겠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박 후보는 질의응답 없이 회견장을 나서다가 기자들이 따라오자 “제가 말씀드린 내용에 모든 것이 함축돼 있고 또 앞으로 실천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저의 진심을 받아들여 주시면 좋겠다”고만 말했다.
회견을 지켜본 이정현 공보단장은 “사적이든 공적이든 이런 수위의 발언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후보는 회견 도중 ‘인혁당’을 ‘민혁당’으로 잘못 발음하기도 했다. “5·16, 유신, 민혁당(인혁당) 사건은 헌법 가치를 훼손하고 정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부분이었다. 이를 놓고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트위터에 “‘인혁당’을 ‘민혁당’으로 잘못 발음하고. ‘5·16’ 뒤에 ‘쿠데타’나 ‘혁명’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에게 ‘인혁당’은 ‘민혁당’과 같은 사건일 것이고, 5·16은 여전히 ‘혁명’일 것이다”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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