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회는 지난해 초부터 수차례 모임을 갖고 세계 각국의 탁월한 후보자들을 심사해왔다. 문학성과 작가의식, 주제의 보편성, 리얼리즘을 기준으로 후보를 선별했으며 환상문학이나 패러디문학은 선정 대상에서 제외했다. 약 1년간의 토의를 거치면서 러시아의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와 블라디미르 마카닌, 영국의 살만 루슈디 그리고 미국의 앨리스 워커를 최종후보로 압축했다.
심사위원회는 토론을 거듭한 끝에 건강한 주제의식과 그에 걸맞은 문체, 삶의 정수(精髓)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 그리고 그것을 담아 낼 수 있는 미학적 구성 능력 등과 같은 문학성뿐만 아니라 작가의 역사의식과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해 울리츠카야가 박경리 문학상의 취지에 가장 적합한 작가라는 결론을 내렸다.
올해 69세인 울리츠카야는 49세 때 중편 ‘소네치카’로 문단의 주목을 받은 이후 ‘메디치상’부터 ‘러시아 대작상’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국내외의 주요 문학상을 휩쓸면서 현대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입지를 굳혔다.
그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는 두 가지 요소는 역사와 개인이다. 작가의 치열한 역사의식은 개인의 신념과 정체성을 통해 역사의 궤적을 되짚는다. 초기작이자 대표작인 ‘소네치카’의 주인공 소네치카, ‘메데이아와 그녀의 아이들’의 메데이아, 그리고 ‘번역가 다니엘 슈타인’의 다니엘까지 그가 창조한 인물들은 모두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 평범한 개인들의 체험을 통해 20세기 역사를 밀도 높게 재조명한다. 그가 궁극적으로 탐구하는 것은 포용과 화합의 가능성이며, 인종과 언어와 문화와 종교의 경계를 넘어 화해와 치유와 용서의 서사를 향해 나아간다.
울리츠카야의 문학은 ‘좋은 소설은 언제나 읽힌다’는 불변의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이는 상업주의와 디지털 문화의 거대한 파도 속에서 진지한 문학이 점차 마멸되어 가는 이 시대에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의 소설들은 리얼리즘의 유구한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서사의 가능성을 간과하지 않는다. 무거운 주제와 심오한 문제의식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따사롭고 흥미진진한 스토리의 세계로 독자를 초대한다. 바로 이 점 덕분에 울리츠카야는 문학성과 대중성 모두를 겸비한 작가, 문학의 전통과 미래를 아우르는 작가다. 그의 문학이 계속 사랑과 평화, 정의에 헌신하기를 바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