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재명]총선의 추억에 갇힌 새누리 지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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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6일 03시 00분


이재명 정치부 기자
이재명 정치부 기자
“4·11총선 때 다들 뭐라고 했나. 우리가 진다고 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나.”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4일 4시간 40분 동안 진행된 의원총회를 끝내며 한 마무리 발언이다. 이 발언 속에 새누리당의 어제와 오늘, 내일이 보인다면 지나칠까.

새누리당 의원들의 위기감은 ‘박근혜 후보 빼고는 다 바꿔야 한다’는 말로 압축된다. 그래서 나온 게 지도부 및 친박(친박근혜) 핵심 퇴진론이다. 하지만 이 주장은 의총장에서 바로 정리됐다.

황 대표는 “사람을 바꾸는 것도 필요하지만 자기가 바뀌면 된다. 어제의 황우여와 오늘의 황우여가 달라야 한다”고 했다. 사실상 의원들의 자기반성을 요구한 셈이다. 이한구 원내대표도 거들었다. “대책 없이 말하면 밖에서 이용하기 좋다. 왜 자꾸 진다고 생각하나.”

황 대표는 그의 말처럼 5일 달라졌다. 기자들이 ‘사퇴 요구를 사실상 거부하는 것이냐’고 묻자 “누가 사퇴를 요구했느냐”며 생뚱맞은 답변을 내놨다.

많은 이의 지적대로 새누리당의 총선 승리는 독(毒)이었다. 근거 없는 낙관론과 대세론에 취해 당내의 비판적 목소리는 자취를 감췄다. 총선 직후 치러진 5·15전당대회에서 친박은 황 대표를 선택했다. 이어진 대선후보 경선 룰 갈등에서 황 대표는 철저하게 친박 편에 섰다. 당내 비판 세력은 점점 더 설 땅을 잃는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황 대표를 선택할 때 친박의 주된 논거는 대안부재론이었다. 지도부 퇴진론이 나오자 이들은 또 대안부재론을 외치고 있다. 국회의원이 149명이나 되는 새누리당에 인물이 없다고 자인하는 꼴이다.

현재 박 후보의 위기가 당 지도부 책임만은 아니다. 후보 본인의 태도와 야권의 상황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문제는 여전히 낙관론과 대안부재론에 사로잡힌 지도부의 안일한 인식이다. 2008년 총선을 앞두고 친이(친이명박)-친박계가 첨예하게 갈등하자 당시 강재섭 대표는 총선 불출마 카드를 던졌다. 희생 없는 탈출구는 없다.

병은 초기엔 진단하기 어렵지만 고치기는 쉽다. 병이 깊어지면 진단하기는 쉽지만 고치기가 어렵다. 새누리당 의원들조차 자신들의 병이 깊다고 진단하고 있다. 다만 병을 고칠 의사(醫師)도, 의사(意思)도 없는 게 새누리당의 현주소다.

이재명 정치부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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