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1명이 6일 상관 2명을 살해하고 경의선 남북관리구역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귀순했다. 북한군 귀순은 2010년 3월 2일 북한군 하전사(병사) 1명이 강원도 동부전선으로 넘어온 이후 2년 7개월 만이다. 하지만 상관을 살해하고 귀순한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다.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7일 “하전사 계급인 북한군 1명이 6일 낮 12시 10분경 경기 파주시 경의선 남북관리구역에서 MDL을 넘어 아군 초소로 뛰어오는 것을 우리 경비병이 발견해 귀순 의사를 확인한 뒤 신병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12시 6분경 북한 초소에서 6발의 총성이 들려 한국군은 경계를 강화하던 중이었다.
귀순한 북한군 병사는 “경비초소에서 경계근무를 하던 중 소대장과 분대장을 사살하고 귀순했다”고 밝혔다. 합참 관계자는 “북측 초소에서 쓰러진 북한군 2명을 옮기는 장면이 관측됐다”고 말했다. 합참은 즉시 해당 지역의 경계태세를 강화했고 김관진 국방부 장관과 정승조 합참의장이 합참 지휘통제실에서 상황을 점검했으나 북한군의 특이 동향은 없었다.
경의선 남북관리구역은 MDL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의 군 초소가 불과 500m 거리에 있다. 양측 군은 개성공단으로 통하는 남측 차량과 인원을 통제한다. 사건 직후 개성공단에 체류하던 남측 입주기업 관계자 300여 명은 예정대로 돌아왔다.
다만 오후 2시경 개성공단으로 들어가려던 기업 관계자 2명은 북측으로의 출경을 취소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상황을 주시하고 있지만 북한 내부에서 발생한 군기(軍紀) 사고인 만큼 개성공단 출·입경에는 영향이 없다”며 “8일 출·입경도 정상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북한 당국이 ‘현행범인 만큼 신병을 넘겨달라’고 요구하며 이번 일을 정치문제화할 가능성도 있다. 군 관계자는 “우리는 귀순 병사를 정치범으로 보고 있으며 북한의 신병 인도 요구가 있더라도 응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날 발생한 북한군 병사의 탈북사건은 북한군의 기강 해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직 탈북 동기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북한에서 ‘최고 출신성분’만 골라서 배치하는 것으로 알려진 경의선 남북관리구역에서 상관 사살에 이어 탈북이 발생했다는 것은 북한군 군기문란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북한군의 기강 해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통일연구원이 북한군 내부자료인 ‘학습제강’과 ‘선동자료’를 분석해 지난해 말 발간한 연구총서 ‘북한군의 기강 해이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2000년대 초부터 군부대의 기강 해이 현상을 심각하게 인식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 내부자료에 따르면 ‘최고사령관이 제시한 당의 노선과 정책의 정당성을 의문시하는 현상’ ‘당의 방침을 무조건 그대로 집행하지 않는 현상’ 등 충성심 약화 사례가 자주 일어나고 있다. 한 강연자료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현지지도를 맞는 부대에서 장교들이 복장도 제대로 갖추지 않아 김 위원장이 심하게 질책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돼 있다. 김정일은 군수물자의 착복과 유용에 대해서도 자주 질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말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집권하면서 최고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이 약해졌고 7월 이영호 총참모장 숙청 등 군부에 큰 변화가 오면서 군기가 더욱 해이해졌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경제난도 군인들의 충성심을 약화시키는 요인이다. 백승주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주민들이 (북한을) 이탈하고 있는 상황에 군인들도 당연히 영향을 받는다”며 “북한 당국이 이번 사건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김정은은 적대분자 색출작업을 지시하는 등 기강 단속에 나섰다고 조선중앙통신이 7일 전했다. 김정은은 국가안전보위부(남한의 국가정보원)를 방문한 자리에서 “적에 대한 털끝만 한 환상이나 양보는 곧 죽음이며 자멸의 길이라는 것을 인민의 가슴에 깊이 새겨줘야 한다”며 “딴 꿈을 꾸는 불순 적대분자들은 단호하고도 무자비하게 짓뭉개 버려야 한다”고 지시했다. 김정은의 이 같은 지시에 따라 북한의 ‘공안통치’가 한층 강화되고 주민들에 대한 통제수위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