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남동구에서 이 사건이 일어난 직후 A 씨의 부인은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가까스로 진술을 마쳤다. 조사가 끝나고 경찰은 “범인을 못 찾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범인을 찾지 못한다니…. 이런 말보다는 “범인을 꼭 잡겠다”고 해야 그나마 위로가 되지 않을까. A 씨 가족은 다시 상처를 입었다.
A 씨는 답답한 마음에 법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수소문했다.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피해자가 입은 상해가 경미해 국가 지원은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 성폭행 피해자를 위한 ‘원스톱 지원센터’에선 “직접 와서 상담을 받으라”고 했다. 월 35만 원짜리 반 지하 월세방에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형편에 일을 쉬고 상담을 받으러 가기는 힘들었다.
정부는 성폭력 피해자들은 상담, 수사, 법률 지원을 원스톱으로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이런 지원은 하나도 받지 못했다. 혼자 수소문하고 인터넷에 글을 올려가며 재판과 소송 관련 정보를 얻어야 했다.
얼마 후 억장이 무너지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가해자는 국선변호인의 도움을 받아 반성문을 두 차례 냈다. 형량을 낮추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피해자는 외면하면서 가해자에게는 국선변호인을 붙여주는 현실에 실망했다.
A 씨는 5일 아동성폭력 추방 카페 ‘발자국’에 탄원서를 부탁하는 글을 올렸다. 가해자를 엄하게 처벌하려면 탄원서를 재판부에 여러 차례 제출하는 게 좋다는 얘기를 주위에서 들었다.
그는 이 글에서 어두웠던 어린 시절을 털어놨다. 학대, 가정불화, 눈물로 얼룩진. 이어 “내 아이와 아내에겐 이런 일이 없게 하자는 마음가짐으로 살았는데 이번 일로 또 다른 충격이 왔다”고 했다.
부부만이 아니라 다른 가족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 장모가 유방암 진단을 받은 뒤 바닥에 넘어져 앞니와 코뼈에 금이 갔다. A 씨는 한때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사지가 멀쩡한 남자인 만큼 스스로 일어서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성폭행 피해자와 가족을 방치하는 듯한 정부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지금까지 정부로부터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했다, 가해자만을 위해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한다, 피해자 가족은 고통 속에 피눈물을 흘리는데 여성부는 대체 뭘 하는 거냐고 원망했다.
사연을 접한 누리꾼들은 “마음이 아파 글을 읽는 내내 눈물이 난다” “진심으로 탄원서를 쓰겠다” “조금이나마 힘이 된다면 못할 게 뭐가 있겠느냐”는 댓글로 격려를 보냈다.
A 씨는 발자국에 올린 또 다른 글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저는 가족들이 살아있어 모두 모일 수 있지만 서진환 피해자 가족들은 피해자가 숨져 그럴 수 없다”며 “그 가족을 구제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동참하고 싶다.”
얼마 전 서진환 사건의 피해자 남편이 목 놓아 우는 장면을 TV에서 보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 가슴이 아파 한동안 제대로 일도 못했다. 그는 수차례 간곡하게 부탁했다. “서진환 사건 피해자 가족을 도와줄 수 있는 길이 없는지, 그분이 어떤 지원을 받았는지도 꼭 알아봐주세요. 부탁입니다….”
본보 9일자 A14면 ‘비 오는 날 당한 아내는 요즘도 비 오면 벌벌 떨어’ 기사와 관련해 법률구조공단은 성폭행 피해자 남편 A
씨의 문의에 국가지원이 안 된다고 답변하지 않았으며 성실하게 구제방안을 안내했다고 알려왔습니다. A 씨도 다른 곳에서 들은 답변을
착각해 잘못 전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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