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시 불산가스 누출사고는 위험물질 관리가 기관별로 제각각 이뤄지면서 빚어진 ‘관재(官災)’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그렇다 보니 사고가 발생하면 ‘컨트롤타워’ 기능이 없어 대형 참사로 이어지기 쉽다는 것이다. 총괄 기능이 없다 보니 매뉴얼이 있어도 현장에서 무용지물이다. 그동안 국내외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잇달았지만 정부는 시스템 개선에 소극적이었고 결국 이번 사고를 초래했다.
○ 사고 나면 ‘우왕좌왕’
현재 유해화학물은 유독성과 환경오염성 등을 기준으로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따라 환경부가 관리한다. 독성가스는 고압가스안전관리법 등을 적용해 지방자치단체가 맡고 위험물은 위험물안전관리법에 의거해 소방서가 관리를 맡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화학 관련 공장에서는 이런 물질을 중복해서 사용한다. 이 때문에 사고가 나면 관할 기관마다 따로 대응하는 일이 벌어진다.
사고 발생 때 가장 먼저 소방관들이 출동하지만 이들의 주임무는 화재진압이나 인명구조다. 하지만 화학물질이나 독성가스 누출사고에 대비한 장비는 물론이고 상세한 매뉴얼도 없다. 이렇다 보니 이번 사고처럼 현장에서 중화제 대신 물을 뿌려 가스 확산을 초래하는 일이 발생했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현재는 화학공장에서 불이 났을 때 필요한 장비만 있을 뿐”이라며 “화학분석차량과 물질별 매뉴얼 등 특성에 맞는 장비와 정보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나마 환경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사고 초기에 현장에 출동할 조직조차 없다. 경기소방본부 관계자는 “어차피 사고가 나면 소방관이 출동할 수밖에 없는 만큼 적절한 장비와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현장의 안전실태를 국제적 수준으로 높일 수 있는 국제노동기구(ILO)의 중대산업재해 방지협약(174호 협약) 비준은 수년째 미뤄지고 있다. 국내 기업 사정과 기관별 이해득실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174호 협약은 1984년 맹독성 가스 누출과 3500명 이상이 사망한 인도 ‘보팔 참사’를 계기로 만들어졌다. 174호 협약은 사고 발생 시 정부 기관의 효율적인 대응을 의무화하고 환경 피해 및 주민 피해에 대한 신속한 대처를 강조하고 있다. 비준이 되면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
김양호 대한직업환경의학회 부회장(울산대 의대 교수)은 “기관마다 규정이나 매뉴얼을 갖고 있어도 유사시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며 “하루빨리 협약 비준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경찰, 전방위 수사 착수
경찰은 이날 “사고가 난 휴브글로벌의 공장 설립 과정에 위법 의혹이 있어 수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2006년 말 조성된 구미국가산업단지 4단지는 디지털산업 분야와 외국인 기업 전용단지. 원래 불산을 취급하는 화학공장이 들어설 수 없었지만 2008년 입주 대상 기업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휴브글로벌 공장이 설립됐다.
사고 발생 및 수습 과정에서 안전관리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공장 관계자 전원도 사법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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