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돈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부부에게 시 쓰기는 생업이다. 밤낮으로 시를 읽고, 쓰고, 시집을 낸다. 돈이 있어야 아이도 키우는 세상에 이들은 다른 직함 없는 ‘시인’으로 초등학교 3학년, 6학년 두 딸을 키운다. 가을 햇볕이 따사롭던 10월의 어느 날. 유종인(44) 문성해(49) 부부 시인이 사는 경기 고양시 아파트를 찾았다. 남편 유 시인이 인근 전철역까지 자전거를 타고 나와 기자를 맞았고 아내 문 시인은 정성스레 깎은 하얀 배를 내놨다. 아는 친척집에 온 것처럼 포근했다.》
부부는 지난달 나란히 시집을 냈다. 남편은 다섯 번째 시집 ‘얼굴을 더듬다’(실천문학사), 아내는 세 번째 시집 ‘입술을 건너간 이름’(창비). 남편이 첫 시조집을 겸한 신간 시집에서 척박한 현실을 벗어난 이상을 꿈꿨다면 아내의 시집은 세상에 발을 딛고 있다.
‘시 한줄 쓰려고/저녁을 일찍 먹고 설거지를 하고/설치는 아이들을 닦달하여 잠자리로 보내고 (중략) 시 한줄 쓰려고 먼 남녘의 고향집 전화도 대충 끊고/그곳 일가붙이의 참담한 소식도 떨궈내고/시 한 줄 쓰려고/바닥을 치는 통장 잔고와/세금 독촉장들도 머리에서 짐짓 물리치고.’(문성해의 시 ‘각시투구꽃을 생각함’에서)
속물적인 궁금증이 일었다. 시집을 내도 초판 1500부를 소화하기 힘든 요즘 시단. 네 식구는 어떻게 생활하며, 두 아이 교육비는 어떻게 감당할까. 답은 이랬다. 한 달 생활비는 200만 원 남짓. 부부는 부업으로 학교 방과후 교실에서 강의를 하거나 각종 문예지에 글을 쓴다. 통장의 잔액은 넉넉했다 바닥을 드러냈다 한다. 올봄엔 지인에게 100만 원을 꾸었다. 적금은 못 붓는다.
더 어려운 얘기를 꺼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돈 들어갈 곳도 많아지지 않겠냐고. 아내가 질문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처럼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따라가려고 하니까 화가 났어요. 형편은 안 되는데 따라가려고 하니…. 결국 제 마음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엄마 아빠가 원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 평생 가난했지만 시를 열심히 쓰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았죠.”
척박한 시인의 길을 말없이 이해해주는 반려자를 어디서 또 만날 수 있을까. 시인 이윤학을 통해 연락처를 주고받은 이들은 전화 데이트 6개월 만인 1998년 여름 비 내리는 서울역 광장에서 처음 만났다. 딸이 시인 사윗감을 데려오자 “시인 둘이 만나 뭐먹고 살라카노”라던 장모도 사위의 부처 같은 성품을 보고 결국 허혼했다. 이성복 시인이 주례를, 손택수 시인이 사회를 맡아 2000년 친정인 대구서 치른 결혼식은 문인들의 잔치였다. ‘열심히 사랑하고, 시 쓰라’는 덕담들.
부부는 10여 년 전 약속 그대로 서로 사랑하며, 열심히 시 쓰고 있다. “시를 안 쓰고 다른 일을 하면 경제적 여유를 얻을 수는 있겠지만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아요.”(문 시인) “생활은 계속 출렁거릴 테지만 시를 놓지는 않을 겁니다. 평생 시 쓰는 마음이 고갈되지 않는 게 소망입니다.”(유 시인)
점심을 달게 먹고 자전거로 인근 도서관에 가서 컴퓨터실 자판을 느긋이 두드리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유 시인이다. 설거지를 마치고 고무장갑을 탈탈 털어 널어놓은 뒤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화장대 앞에 앉아 밤새 커서를 옮겼다, 되돌렸다 하는 이는 문 시인이다. 일산의 거대한 아파트단지 귀퉁이에서 부부 시인은 오늘도 한 행, 한 연을 골똘히 채우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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