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6년 만에 대통령직선제가 부활된 후 5번 치러진 대통령선거 때마다 상대 후보에 대한 무차별 공격, 흑색선전, 허위비방, 폭로 등 네거티브 공세는 빠짐없이 등장했다. 언론과 전문가들은 후보 자신의 장점과 정책을 강조하는 포지티브 선거운동을 촉구했지만 각 대선후보 진영은 유권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데 효과적인 네거티브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실제 네거티브는 선거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다’는 국민적 기대감이 절정에 이르렀던 1987년 대선부터 각 후보는 대규모 청중 동원으로 세를 과시했고 불법 유인물 대량 배포와 흑색선전 인신공격이 난무했다.
주요 후보들 모두 지역을 기반으로 대선에 도전해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네거티브 공세가 판을 쳤다. 결국 일부 유세장에서 사제폭발물까지 등장하는 폭력사태가 일어났고, 현직 장관과 고위 공직자가 “(여당이) 다시 잡으면 (여당 노태우 후보의 유세를 방해한 사람들을) 그냥 놔두지 말라”, “타작을 해야 한다”는 대화를 주고받는 ‘싹쓸이 발언’까지 나왔다.
김대중 김영삼 후보가 후보 단일화를 놓고 신경전을 펼치면서 특정 후보가 양보하기로 했다는 헛소문을 퍼뜨리는 유인물이 나돌았고, 관권 선거 우려 속에 “투표소에 첨단장비를 설치해 어느 후보를 찍는지 다 알 수 있다”는 유언비어까지 나왔다.
1992년 대선에선 불법 도청에 의한 폭로가 등장했다. 정주영 후보 측은 부산 지역 정부기관 기관장들이 모여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여당의 김영삼 후보를 돕기 위해 선거에 개입하는 내용의 대화를 나눈 것을 몰래 녹음한 내용을 공개했다. 이른바 ‘초원복집 도청사건’이다. 이들의 대화 내용은 명백한 선거법 위반으로 김 후보를 곤경에 빠뜨리기 위한 정 후보 측의 기획성 폭로였다. 그러나 결과는 불법 도청에 대한 비판 여론과 함께 김 후보 지지표를 결집시키는 역풍을 불러왔다.
2002년 대선은 최악의 네거티브 선거였다. 1997년 대선에서 장남의 병역 기피 의혹으로 곤욕을 치렀던 이회창 후보를 상대로 다시 “장남 정연 씨가 불법으로 병역을 면제받았고 이를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 추가로 제기돼 병풍(兵風)이 거세게 불었다. 김대업 사건이다. 게다가 “이 후보의 부인 한인옥 씨가 기양건설에서 10억 원을 받았다”, “이 후보 측이 최규선 씨로부터 20만 달러를 받았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결국 이 후보가 박빙의 승부 끝에 패배하고 선거가 끝난 후 대부분의 의혹들은 근거 없는 것으로 결론 났다.
당시 이 후보는 공식선거 운동이 시작된 후 뒤늦게 노무현 후보를 상대로 적극적인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맞섰다. 노 후보의 수도이전 공약과 불안정성을 비판하면서 ‘불안한 후보, 위험한 서울’, ‘국민은 정말 불안합니다’라는 광고를 내보냈다.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를 ‘정체 모를 야합’으로 몰아붙였고, 김대중 정부의 실정을 지적하면서 ‘정권심판론’을 내세웠다. 인천대 이수범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이 후보는 30건의 신문광고 중 20건을 노 후보를 공격하는 부정적 내용으로 실었다. 반면 노 후보는 28건의 신문광고 중 11건이 부정적 내용이었다. 초대형 네거티브로 결정적 피해를 본 이 후보가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만회하려 했으나 실패한 셈이다.
2007년 대선은 이명박 후보의 일방적 독주 속에 끝났지만 이 후보를 향한 정동영 후보의 네거티브 공세는 2002년 못지않았다. 정 후보는 BBK 주가조작 사건에 이 후보가 연루돼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후보 가족의 위장전입과 자녀의 위장취업 의혹도 제기했다. 서울대 박찬욱 교수가 펴낸 ‘제17대 대통령선거를 분석한다’는 연구서에 따르면 정 후보는 캠페인의 67.4%를 이 후보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캠페인에 주력했다. 반면 이 후보는 민주당의 집권 시기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비판하는 등 전체의 30.7%만 네거티브에 할애했다. 박 교수는 “정 후보의 캠페인은 노골적인 네거티브 캠페인의 결정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경제대통령을 내세운 이 후보를 네거티브로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이처럼 대선마다 네거티브가 기승을 부리는 것은 선거가 끝난 후 책임을 묻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등을 이용해 의혹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네거티브의 부작용이 부각될 때마다 여론과 정치권이 ‘네거티브 방지법’ 제정 등 대책 마련을 외치다가도 막상 선거가 끝난 후면 잊어버리는 것도 문제다. 2002년 이회창 후보 측근의 20만 달러 수수 의혹을 제기했다가 실형을 선고받았던 설훈 의원은 노무현 정부 말기 사면복권돼 피선거권을 회복한 뒤 올해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공천을 받아 8년 만에 다시 국회로 돌아왔다.
미국도 대선 때마다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배신자’ ‘거짓말쟁이’ 같은 비난과 인신공격이 오간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가치와 정책을 둘러싼 공방이지, 후보의 아버지나 상대 당 전임 대통령의 행적까지 파헤치는 경우는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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