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 유인도와 38개 무인도를 거느린 ‘섬 공화국’ 추자도 앞바다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옷 틈을 파고드는 한기에 피부는 시리지만 마음만은 뜨겁다. 추자도 명물 가운데 하나인 ‘삼치’가 돌아와 어장을 형성한 것이다.
25일 오후 제주시 추자면 추자도 추자수협 위판장. 추자수협 소속 10t 미만 어선들이 하나둘 모습을 보였다. 배에서 수십 마리씩 삼치가 내려지면서 수협 직원들의 손길이 바빠졌다. 위판가격은 kg당 7000∼9000원 선.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몇 달 동안 일손을 놓고 바다만 바라본 것에 비하면 감지덕지다. 삼치를 잡는 어민들의 부산한 손길은 내년 3월까지 이어진다.
○ 살살 녹는 겨울 별미
삼치는 고등엇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로 등 쪽이 회색을 띠는 청색이고 배 쪽은 은백색을 띤다. 산란을 한 뒤 따뜻한 조류를 따라 남하하다 추자도 부근에서 어장을 형성한다. 추자도 어장에선 길이 60∼70cm(5∼7kg)가량의 삼치가 주로 잡히지만 12월이면 100cm 안팎의 대형 삼치도 모습을 드러낸다. 시중 음식점에서 파는 구이용 삼치는 주로 중국 어선들이 저인망식으로 잡는 20∼30cm 크기의 어린 삼치다.
배에서 갓 잡은 삼치를 근처 식당에서 회를 떴다. ‘입에서 살살 녹는다’는 표현이 제격이다. 쫄깃한 느낌은 덜하지만 눅눅하지는 않았다. 여러 번 젓가락이 가도 자꾸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삼치회는 소스도 초고추장이나 간장과 달리 조청, 간장, 매운 고추 등을 섞은 소스에 찍어 먹어야 제맛이다.
해안 지역을 제외하고는 삼치회를 즐기기 시작한 지는 오래지 않았다. 냉장을 하지 않고서는 회 맛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살이 연해 숙련된 사람이 아니고서는 회를 뜨기도 어렵다. 삼치는 버릴 게 없다고 한다. 소금구이, 조림, 찜, 튀김 등으로 다양하게 먹을 수 있다. 껍질을 화롯불에 구워 먹어도 맛있다. 매운탕을 하면 하얀 기름이 둥실둥실 뜬다.
삼치는 다른 고등엇과 생선과 마찬가지로 단백질 등 영양소가 풍부하고 혈압을 낮춰주는 칼륨도 다량으로 함유하고 있다. 고도 불포화지방산인 DHA를 함유해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두뇌 발달에 도움을 준다.
○ 국내 최고 추자 삼치
삼치는 국내 연안에서 잡히지만 추자 삼치를 최고로 친다. 바다 밑바닥까지 내린 그물로 온갖 생선을 잡는 저인망어선과 달리 낚시를 이용해 잡는다. 추자 어선들이 사용하는 삼치 어법은 일반 낚시를 이용하는 다른 지역과 다르다. 100∼150m에 이르는 긴 줄 끝에 인조미끼를 끼운 낚시 60∼80개를 바닷속에 내려놓은 뒤 일정 속도로 운항하면서 삼치를 잡아 올린다.
추자에서 잡히는 삼치는 연간 400t 규모에서 최근 200t 규모로 줄었다. 기후변화에 따른 이유도 있지만 중국 어선과 국내 저인망어선의 ‘싹쓸이 조업’이 삼치 자원을 고갈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신평호(6t) 선장 김명승 씨(48)는 “풍랑주의보가 내려지면 추자도의 소형 어선들은 조업을 못하는데, 이때를 노려 중국 대형 어선들이 저인망으로 삼치를 무더기로 잡아간다”며 “울화통이 터지지만 어찌하지 못하고 발만 구를 뿐”이라고 말했다.
추자도 삼치 조업은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했다. 당시 잡힌 삼치는 전량 일본으로 수출되거나 공출됐다. 그동안 추자 근해에서 잡히는 방어, 조기 등에 가려 국내에서 빛을 보지 못했지만 최근 추자 삼치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면서 제주와 호남권에서 회를 즐기는 층이 넓어지고 있다.
추자수협 최성근 판매과장은 “현재는 국내 수요가 많지 않아 일본 수출가보다 국내 판매가격이 다소 높은 편”이라며 “방어에 비해 저평가된 삼치가 소비자 입맛을 잡는다면 공급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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