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붉은 색깔.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배를 가른 흉한 겉모습만 봐서는 도통 먹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바로 과메기 얘기다. 그래서일까, 과메기는 10여 년 전만 해도 경북 포항과 대구 등에서만 유통됐다. 하지만 요즘은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 전국에 독특한 맛이 알려지면서 제철을 기다리는 미식가가 많아졌다.
○ 겨울철 별미 과메기
과메기 계절이 돌아왔다. 요즘 본고장인 경북 포항시 구룡포 해안은 덕장에 줄줄이 꿰인 과메기가 즐비하다. 찬 바닷바람과 햇살을 받아 냉동과 해동을 거듭하며 말리는 장면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구룡포를 비롯해 장기·대보·호미곶면에는 과메기 생산업체 400여 곳이 운영 중이다. 이곳에서 연간 5000t의 과메기가 생산된다. 전국 생산량의 90%다.
원조 과메기는 청어 눈을 꼬챙이에 꿰어 말려 만들었지만 1960년 이후 청어가 줄면서 꽁치가 그 자리를 꿰찼다. 통째로 새끼줄에 엮어 보름 정도 말리는 ‘통마리 과메기’와 머리와 내장을 제거하고 뼈를 발라 3, 4일 말리는 ‘배지기 과메기’로 나뉜다. 건조 기간이 짧고 먹기도 간편한 배지기 과메기가 인기지만 진정한 과메기 애호가들은 지금도 통마리 과메기를 찾는다.
겨울 바닷바람을 맞고 숙성된 과메기는 김, 미역 등 해초류와 기가 막힌 궁합을 이룬다. 식성에 따라 마늘 상추 깻잎을 얹어 먹으면 씹을수록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향긋한 미나리와 풋풋한 고추, 맛깔스러운 쪽파까지 더하면 과메기 맛은 배가된다. 김점돌 구룡포 과메기사업협동조합장은 “과메기는 김과 미역을 돌돌 말아 초고추장을 찍어 먹는 것이 정석”이라며 “겨울만 되면 구룡포에는 그 맛을 잊지 못한 관광객의 발걸음이 이어진다”고 말했다.
○ 바다의 홍삼
과메기는 전통적으로 특별한 양념이나 조리할 필요 없이 즐기는 음식이다. 그러나 이를 밋밋하게 느끼는 사람을 위한 색다른 과메기 요리가 등장하고 있다. 가장 쉽게 만들 수 있는 게 ‘과메기 회무침’. 과메기와 생도라지, 풋마늘 등 여러 채소를 넣어 깔끔한 맛을 내는 게 포인트다. 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과메기 초밥’은 비린내를 없앤 것이 특징. 미나리와 김, 파 등을 과메기 몸에 감아 먹는다. 미나리와 깻잎 고추 된장 과메기를 버무려 김치에 싸서 먹는 ‘과메기 보쌈’은 채소의 향긋함과 과메기의 고소함이 어우러져 젓가락질을 바쁘게 한다. 과메기를 김에 싼 후 튀겨낸 ‘과메기 튀김’은 맛이 부드럽고 담백해 아이들이 좋아한다.
과메기는 꽁치로 만들었지만 영양은 꽁치보다 훨씬 우수하다. 숙성 과정에서 노화 현상과 체력 저하, 뼈의 약화를 억제하는 핵산이 많아진 덕분이다. 인삼을 쪄서 말리면 홍삼으로 거듭나듯 꽁치도 과메기로 바뀌면서 영양분이 높아지는 것이다. 불포화 지방산이 풍부해 성인병 예방에 좋고 아스파라긴산도 많아 숙취 해소에도 효과가 있다. 갱년기 여성에게 필수 영양분인 칼슘도 다량 함유돼 뼈엉성증(골다공증) 예방에도 좋다.
건강과 맛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점 때문에 과메기는 해가 갈수록 인기다. 2007년부터는 미국 일본 중국 태국 등 해외로 수출돼 세계인의 입맛을 유혹하고 있다. 과메기 인기가 높아지면서 과메기 축제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15회째를 맞은 올해 축제는 17, 18일 구룡포 과메기 문화거리에서 펼쳐진다. 박승호 포항시장은 “과메기는 포항의 상징이자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로 명성을 쌓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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