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이상혁 최고개발책임자가 말하는 성공비결 “아이디어 낸 직원이 팀 꾸리는 파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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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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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 개발을 이끈 이상혁 최고개발책임자(CDO)는 “카카오톡이 아시아 1위가 됐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카카오 제공
카카오톡 개발을 이끈 이상혁 최고개발책임자(CDO)는 “카카오톡이 아시아 1위가 됐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카카오 제공
“3년을 매달렸는데 성과가 없었어요. 결국 웹은 네이버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3년을 열심히 일하고 얻은 건 절망뿐이었다. 이상혁 카카오 최고개발책임자(CDO)는 2009년을 그렇게 회고했다.

당시 그의 목표는 하나였다. 무엇이든 ‘사용자 10만 명짜리 서비스’ 하나만 만들자는 것. 하지만 되는 게 없었다. 이 CDO는 “당시 미국에선 이미 ‘최종목적지 서비스’가 되겠다는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겠다는 벤처투자자들이 늘고 있었다”고 했다. 최종목적지 서비스란 자체적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한 번에 제공하는 웹서비스를 말한다. 한국의 네이버나 다음, 미국의 페이스북, 구글 같은 서비스 얘기다. 한국도 미국도 이미 성공한 웹서비스가 너무 커 더이상 새로운 성공은 불가능하다는 패배주의가 지배하던 때였다.

모바일을 택한 건 도박이었다. NHN을 나와 아이위랩(현 카카오)을 세운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당시 “이번에도 실패하면 다 접자”고 최후통첩을 하고는 그해 4월 미국에서 아이폰 7대를 사왔다. 국내에서 아이폰이 팔리기 7개월 전 일이었다. 이 CDO는 “그때 아이폰은 ‘담달폰’(다음 달에나 나올 폰)이라 불릴 정도로 한국에서 팔릴지조차 불투명했다”고 말했다.

7명의 개발자는 각각 아이폰 한 대씩을 나눠 갖고 연구를 시작했다. 2009년 말 아이폰이 국내에서 팔리기 시작한 직후 팀을 셋으로 나눴다. 이 CDO의 팀은 그중 하나였다.

이러저런 앱을 만들다 2010년 2월 초에는 메신저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제품이 완성된 건 3월 19일. 아이폰 앱스토어에 올라가자마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3년 이상 노력해도 불가능했던 10만 명 가입자가 단 이틀 만에 모였다. 이후 카카오톡은 한국을 넘어 해외 사용자들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다. 지금 카카오톡 사용자는 6300만 명을 넘어섰다. 사진공유 서비스 ‘카카오스토리’, 모바일게임 플랫폼 ‘카카오 게임’ 등 카카오톡을 이용한 관련 서비스도 연이은 성공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 CDO는 이런 성공의 배경을 “모든 것을 모든 직원에게 공개하는 기업문화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카카오 직원들은 ‘카카오 아지트’라는 모임 앱을 통해 회의를 대신한다. 일반인도 내려받아 쓸 수 있는 이 앱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 제안이나 팀 회의, 업무 보고 등 대부분의 일을 한다. 신입사원부터 대표이사까지 모두가 모든 팀의 일을 볼 수 있다. 직원 사이에는 서로의 연봉 말고는 비밀이 없다.

일하는 방식도 다르다. 아지트에 아이디어가 올라오면 “멋지다”는 댓글이 달린다. 이런 댓글을 단 사람들을 중심으로 팀을 꾸린다. 체계도, 조직도 없지만 이런 팀의 회의록과 중간성과가 모든 직원에게 공개되기 때문에 모두가 알아서 열심히 일한다.

이 CDO는 엔지니어 중심의 회사 문화도 성공 비결로 꼽았다. 그는 “최근 동남아 메신저 시장을 살피기 위해 태국에 다녀왔다”며 “필요해서 해외 출장을 가겠다고 하면 짧게는 2, 3일, 아무리 늦어도 보름 내로 비행기를 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개발 직군의 직원들에게만 주는 혜택이다. 인사, 회계, 홍보 등 이른바 ‘지원부서’ 직원들은 이런 혜택이 없다.

이 CDO는 “무질서해 보이지만 모든 팀을 10명 이하로 유지하고, 팀장은 팀원들이 뽑는 등 관료화하지 않게 자극하며, 수평적으로 대화하는 분위기를 만든 게 카카오의 성공 비결”이라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카카오톡#이상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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