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13년도 예산안을 두고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사이에 긴장이 감돌고 있다. 여야는 각자 대선후보의 공약을 내년 예산에 반영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박근혜표 예산’과 ‘문재인표 예산’ 사이의 간극이 커 협의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야의 복지 분야 증액 요구에 정부가 ‘복지사업은 한번 시작하면 없애기 힘들다’며 버티는 것도 예산안 협의의 난관이다. ‘솔로몬의 해법’이 나오지 않는 이상 여야가 합의한 기한(11월 22일) 내 국회 처리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 여야 모두 “공약사업 예산에 반영해야”, 항목은 제각각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342조5000억 원)에 대해 여야는 모두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고민이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예산을 얼마나 늘려야 할지에 대한 의견은 사뭇 다르다.
최근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발표한 10대 중점 증액사업 중 일치하는 항목은 △0∼2세 보육수당 전 계층 지원 △0∼5세 양육수당 전 계층 지원 △대학등록금 부담 경감 및 대출이자 인하 정도다.
새누리당은 그 밖에도 △중소기업 취업을 전제로 장학금을 주는 희망사다리 장학금 도입 △사병월급 인상 △저소득층 사회보험료 지원 확대 △경로당 난방비 및 양곡비 지원 등을 예산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당 사업은 4·11총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직접 밝힌 공약으로, 대선 공약의 바탕이 되고 있다. 새누리당에서는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협의를 거쳐 관련 예산을 1조6000억 원가량 늘릴 방침이다.
반면 민주당은 재정지원 일자리 사업 예산을 5조 원 늘리는 것을 포함해 △친환경 무상급식 국고 지원 △기초노령연금 인상 △남북평화·공존 관련 사업 확대 등을 중점 증액 대상으로 꼽고 있다. 대부분 문 후보의 공약과 일치한다.
민주당이 요구하는 사업을 모두 반영할 경우 필요한 예산은 12조 원에 이른다. 민주당은 기존 예산에서 시급하지 않거나 효과가 적은 사업을 9조 원가량 삭감하고, 부자감세를 철회해 나머지 3조 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야 모두 증액 사업이 대선후보의 공약이기 때문에 양보도 쉽지 않다. 특히 예산안 통과의 키를 쥔 여당은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이라는 박 후보의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증액 사업을 통과시켜야 하는 처지다.
○ 정부와의 줄다리기도 관건
여야 합의도 중요하지만 정부를 설득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 헌법 57조에 따르면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예산을 증액할 수 없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복지제도의 무분별한 확대는 곤란하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박재완 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정책질의 첫날 “복지 예산은 한 번 반영하면 항구적으로 반영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며 일찌감치 선을 그었다.
부자감세를 철회해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민주당의 주장에 대해서도 박 장관은 “상위 1%가 소득세의 46%를 내고 있는데 이는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과중한 것”이라며 “넓은 세원, 낮은 세율 기조를 벗어나면 안 된다”고 반박했다.
여야는 대선 일정을 감안해 이번 주에 부처별 예산안 심사를 진행하고, 다음 주 예산안조정소위원회(계수조정소위) 심사를 거친 뒤 22일 본회의에서 예산안을 통과시킨다는 일정을 세워두고 있다. 하지만 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할 경우 대선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도 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4일 “내년부터는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11월 30일까지 심사가 끝나지 않으면 예산안이 본회의에 자동 상정되지만 올해는 그렇지 않다”며 “현실적으로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되는 27일 전까지 통과되지 않으면 대선 이후로 미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07년 대선 때에도 예산안 통과가 선거 이후로 미뤄진 전례가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예산안 법정처리기한(12월 2일)을 넘기는 것에 대한 비판을 각오해야 한다.
예결위 민주당 간사인 최재성 의원은 “이번 예산안의 경우 정부의 세입 규모 추정에도 문제가 있고, 여야 간 쟁점도 많아 지뢰가 곳곳에 있다”면서도 “지금까지 비교적 잘 진행된 만큼 가급적 22일에 처리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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