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맹이 없는 성장대책… 성장률 1.6% 쇼크이후 끼워넣기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5일 03시 00분


[대선 경제공약 점검]
“현 위기상황 고백 無… 구체적 실행계획 無… 정책 일관성 無” 지적

《 주요 대선후보들이 ‘경제 성장’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정확히는 지난달 26일 올 3분기(7∼9월) 경제성장률이 3년 만에 처음으로 1%대(전년 동기 대비 1.6%)로 추락했다는 정부 발표가 나온 뒤부터다. 올 초부터 ‘경제민주화’ ‘복지 확대’ 경쟁에만 힘을 쏟은 정치권에서 “복지만 강조하기에는 현 경제상황이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위기론이 적잖이 확산된 결과다. 하지만 각 캠프가 내세우는 성장의 방법론에는 여전히 ‘알맹이’가 없다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평가다. ‘화려한 수식어’와 달리 실제 성장을 실행할 수단은 ‘벙벙한 서술어’에 그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수출-소비-투자 등 경제성장을 이끌 수 있는 세 축이 모두 흔들리는 현 시점에서 ‘액션플랜(실행계획)’이 없는 성장론은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
○ 성장공약들 선언적 구호가 대부분

세 후보가 내세우는 성장론의 공통점은 목표나 수치보다 ‘선언적 구호’가 많다는 점이다. 모두가 분배를 강조하다가 갑자기 이념적 대척점에 있는 성장의 화두를 제시하려다 보니 이를 세부 공약으로 제시할 준비가 미처 안 돼 나타나는 현상으로 분석된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과학기술과 정보기술(IT)을 통한 일자리 창출, 소프트웨어 산업 육성을 근간으로 한 ‘창조경제론’을 성장구호로 들고 나왔다. 고(高)부가 첨단기술을 전통 산업과 융합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경기진작 대책으로는 약 10조 원 규모의 재정 투입을 통한 경기부양책을 검토 중이다. 다만 이마저도 내부 조율이 안 돼 최종 공약으로 제시될지는 미지수다. 집권 후 경제성장률 목표나 일자리창출 수와 같은 계량적인 목표는 아직 내놓지 않았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중소기업 육성, 공정한 시장경제 확립을 통한 ‘공정경제’를 내세우고 있다. 또 포용적·창조적·생태적·협력적 성장이라는 ‘경제성장 4대 전략’을 제시했다. 문 후보는 “성장을 통해 일자리를 찾는 게 아니라 일자리를 통해 성장을 찾아야 한다” “적극적 복지지출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는 “결국 지금까지의 경제민주화 공약에 ‘성장’이란 단어만 살짝 끼워 넣은 것 아니냐”고 비판하고 있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복지와 성장이 선(善)순환하는 혁신경제’를 강조하며 상대적으로 일치감치 성장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그러나 성장론의 구체성이나 방법론은 문 후보 등 다른 후보와 차별화되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 안 후보는 ‘중소·중견기업 맞춤형 성장’ ‘IT산업이 중심이 되는 혁신경제’를 주장한다. 그는 “대기업 외에 한국 경제의 또 다른 축인 중소기업, 벤처기업을 발전시켜 국가경제 포트폴리오를 완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 “앞뒤 안 맞고 곳곳 허점 노출”

전문가들은 대선후보들의 성장 공약 곳곳에 허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구체적인 목표나 실행방안 없이 듣기 좋은 말만 나열하다 보니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생긴다는 비판이다.

오정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박 후보의 창조경제론은 고부가 지식산업으로 나가자는 것인데 이를 위해 기존 ‘평준화 교육’의 틀을 수정한다는 등의 인재육성 방안이나 획기적 규제완화책이 결여돼 있다”며 “문 후보도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이 부족하기 마련인 중소기업만 육성해서 어떻게 경제발전을 지속시킬 것인지에 대한 해법이 없다”고 꼬집었다.

각 후보의 성장론이 한국 경제 최대 현안 중 하나인 일자리 문제를 풀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문 후보는 ‘일자리로 경제성장을 하겠다’고 하는데 정부가 재정을 풀어 만든 ‘공공 일자리’는 지속가능하지가 않다”며 “말이 마차를 끌어야 하는데 마차가 말을 끌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안 후보의 경우 IT 산업을 통한 성장에 방점을 뒀지만 고용 창출에 큰 도움이 안 되는 기술기반 경제로 어떻게 청년실업을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장 및 일자리 공약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업규제 강화’를 내놓는 데 대해서는 경제학의 기초상식에서 벗어난 발상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게다가 문 후보와 안 후보는 실업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대기업, 공기업의 청년채용을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규제를 통해 만들어진 일자리는 지속가능하지도 않고 탈법과 불법으로 이어질 소지가 크다”고 경고했다.

○ ‘성장정책 기본’인 경기인식조차 부족

대선후보들이 성장 공약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현재 경기에 대한 판단을 전혀 내놓지 않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은 “대내외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지금 경제는 어떻고, 앞으로는 어떨 것이니 뭘 해야 한다’고 말하자니 득표에 도움이 안 될 것 같으니까 아예 입을 닫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업률, 국가부채 등 경제지표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과 대응방안을 갖고 치열한 토론을 벌이는 미국 대선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대목이다.

한국 경제는 성장을 견인해온 수출, 내수소비, 기업투자 중 글로벌 경제위기, 가계부채 등의 문제로 수출과 내수소비가 위축됨에 따라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 없이는 성장을 견인할 방법이 없는 상황. 민간소비는 가계 순저축률이 3% 안팎(지난해 2.7%)에 머무를 정도로 가처분소득이 줄어 침체에 빠져 있고, 수출도 세계 경제위기에 따른 교역위축과 원화강세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와중에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논의에 위축돼 기업들이 현금을 쌓아놓고 투자를 꺼리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장밋빛 비전으로 국민을 현혹하는 것은 안 될 일이지만 대선후보라면 최소한 우리 경제가 나갈 좌표를 설정해 제시해야 한다”며 “이런 과정이 없으면 누가 당선되더라도 당장 내년도 경제정책을 정하는 데 큰 혼선이 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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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박근혜#문재인#안철수#대선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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