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경제력에서 미국을 능가하는 날이 오더라도 곧바로 미국을 대체하는 패권국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제시한 ‘헤게모니(hegemony)’ 개념을 빌리자면 중국은 글로벌 리더가 되는 데 필요한 물리력(force)과 동의(agreement)라는 두 측면에서 아직 갈 길이 멀다.
중국이 조만간 동남아시아 약소국을 제압하는 지역강국이 될 수는 있겠지만 글로벌 군사 대국이 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미국이 항공모함 11척으로 전 세계 바다를 순찰하고 있는 지금 중국은 이제 막 항공모함 하나를 가지려 하는 참이다.
동의의 측면은 더 취약하다. 중국은 아직 낡은 공산당 독재를 유지하면서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자국민의 인권을 탄압하고 있다. 그런 중국이 미국이 전 세계에 전파한 자유민주주의와 평화의 가치를 뛰어넘어 전 세계인이 동의할 만한 새로운 사상과 가치를 제시하고 문화 헤게모니까지 장악하는 것은 훨씬 어려운 과제라고 국제정치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중국이 정치 경제 문화적 패권국가의 요소를 모두 갖추고 본격적인 미-중 패권 경쟁시대로 진입하는 것은 아직은 먼 미래의 얘기라는 것이다. 국제정치학의 권력 전이(轉移) 이론에 따르면 미-중 간 패권다툼 과정에서 전면전은 아니라도 국지전이 일어날 가능성은 충분하다. 과거 시차를 두고 세계를 지배했던 포르투갈과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의 등장과 몰락 과정에는 언제나 전쟁이 있었다.
하지만 다수의 핵무기를 바탕으로 상대방은 물론이고 전 세계를 파괴할 힘을 가진 두 강대국이 국제정치 무대에서 정치적 지역적 영향력을 양분하면서 긴장된 평화를 유지할 수도 있다. 신(新)현실주의가 주장하는 ‘미-소 양극 체제의 안정성’이 재현되는 셈이다.
국제정치 무대의 초강대국들이 서로 갈등하느냐, 화합하느냐는 미리 결정된 것이 아니라 행위자들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만들어 가느냐에 달렸다고 주장하는 ‘구성주의’ 이론에 따르면 향후 미-중 관계의 미래는 이번 주 등장하는 새로운 지도부를 포함한 양국의 리더들이 하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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