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대선후보 3인의 일자리 공약에 대해 고용·노동 전문가들은 낙제점이나 다름없는 성적을 매겼다. 실현 가능성이 낮은 ‘뜬구름’ 잡는 주장이 많을 뿐 아니라 ‘어디선가 본 듯한’ 공약들이 대부분으로 참신성이 떨어진다는 게 전반적인 평가다.
또 후보들의 일자리 공약들은 모두 전체적 완성도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심각한 결함이 있어 누가 집권하든 차기 정부가 일자리 문제, 특히 한국 경제의 미래와 직결된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현실적이지만 의지 부족한 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일자리 공약은 현실성은 높아도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 의지가 부족해 보인다는 평가가 많았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박 후보의 공약을 요약하면 기존 성장논리에 의존해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으로 사실상 미온적인 대책이 대부분”이라며 “지금은 일자리 문제에서 좀 더 분명한 목표의식이 필요한 때”라고 지적했다. 박 후보의 ‘창조경제’ 관련 일자리 구상이 긴급조치가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청년고용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다.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경제학)는 “박 후보가 산업정책을 통한 고용창출을 강조해 일자리 문제의 ‘모범답안’을 내놓고는 있지만 노동시장에서 밀려나는 구직자를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에서는 집중력이 다소 부족하다”며 “고용과 복지를 연계하기 위한 좀 더 구체적인 정책 고민이 있었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전반적인 평가는 박 후보의 공약이 다른 두 후보에 비해 높았다. 조동훈 한림대 교수(경제학)는 “박 후보의 창조적 일자리 창출은 우리 경제가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에 대한 규제를 지나치게 강조해 정작 일자리를 만들어야 할 기업의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는 다른 후보들의 공약에 비해 방향을 잘 잡았다는 평가다. ○ 의욕적이지만 뜬구름 잡는 文
다수의 전문가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공약의 실현 가능성을 낮게 평가했다. 지지층이 많은 노동계의 주장을 많이 반영하다보니 ‘규제를 통한 일자리 창출’에 지나치게 의존해 지속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강소기업 일자리 경제’를 구현하기 위해 중소기업 4000개를 중견기업으로 키우겠다”는 공약이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는 “중견기업은 정부가 지원한다고 경쟁력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며 “과거의 벤처 열풍처럼 정부 지원이 끊긴 뒤에는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특히 문 후보의 청년고용할당제, 특수고용직 노동3권 보장, 공무원 증원 등은 ‘무리한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박준성 성신여대 교수(경영학)는 “청년고용 의무할당제는 인기는 있겠지만 이 제도가 도입되면 기업들은 결국 숫자만 끼워 맞추려고 할 것”이라며 “일자리는 기업이 만드는 것인데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부분이 없다”고 아쉬워했다. 조동훈 교수도 “기업 규모 간 임금격차를 인위적으로 해소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문 후보의 공약이 단기적으로는 일자리의 질과 양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 공감했다.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당장은 근로자들의 소득과 직업 안정성을 높일 수 있고, 정부가 규제하면 기업들이 당장은 따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 일자리 정책도 좋은 말만 많은 安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일자리 공약은 대선주자 3인 중 총점이 가장 낮았다. 전문가들은 “구체성이 결여됐다” “교과서적인 정책 나열에 불과하다”는 등의 평가를 내렸다.
김동원 고려대 교수(경영학)는 “안 후보는 공약이 급조된 느낌이 많이 든다”며 “여기서 좋은 것, 저기서 좋은 것 다 가져다가 공약이라고 내세우고 있어 철학과 고민이 부족한 것 같다”고 비판했다. 조준모 교수도 “기술혁신, 벤처정신을 강조한 것은 우파적이지만 좌파적인 규제정책도 다수 담겨 있다”며 “고용정책이 이념적으로 섞여 있어 일자리 정책의 정체성이 혼돈스럽다”고 평가했다.
김영봉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통상학)는 “대통령 직속 국민합의기구와 노사정 대화기구를 활성화해 고용을 해결하겠다는 것은 허황되고 자기도취적”이라며 “이미 노사정위원회가 있지만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정·사회정책연구부장은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등 일자리 질을 높이는 데 너무 치중해 과연 일자리를 늘릴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 “세 후보 모두 실패한 공약의 답습”
세 후보가 공히 이전 선거 때마다 나왔던 공약을 되풀이하는 것 같다는 지적은 여전했다. 실패로 돌아갔던 과거의 공약들을 답습하고 있어 이번 일자리 공약들도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다.
이지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세 후보 다 지나치게 이상적인 생각을 갖고 있고 공약들에 참신성이 없다”며 “이전에 어디선가 본 듯한 공약들뿐”이라고 지적했다.
후보들이 좀 더 근본적이고 중장기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김영봉 교수는 “세 후보 모두 일자리 창출의 주체인 기업에 대한 지원, 투자 증대 방안, 성장동력 발굴과 규제 완화 등의 공약이 전무하다”며 “이런 방안이 빠진 공약을 ‘일자리 창출 공약’으로 볼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20대 취업 6개월째 감소… 청년고용 빙하기▼ 20대 후반 대졸자 가장 타격
20대(20∼29세) 취업자 수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6개월 연속 감소하는 등 청년들의 고용상황은 계속 악화되고 있다.
통계청이 14일 내놓은 ‘10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20대 취업자는 353만9000명으로 지난해 10월보다 9만4000명 감소했다. 작년 동월 대비 20대 취업자 수는 올해 5월(―4만2000명)에 감소세로 전환된 뒤 6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인구증감 효과를 제거한 10월의 20대 취업자 수 감소 폭은 10만4000명으로 더 커진다. 특히 취업준비생들이 몰려 있는 20대 후반(25∼29세) 취업자 수가 17만1000명이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 ‘대졸 구직난’이 여전히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20대 고용률은 58.6%로 지난해 10월보다 1.6%포인트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이 한창이던 2009년 3월(―1.9%포인트) 이후 가장 큰 감소 폭이다.
특히 20대 후반은 아래에서는 고졸취업 확대에 치이고, 위로는 30대 경력자 취업 증가에 가로막힌 ‘샌드위치 효과’를 겪고 있다. 10월 20대 초반(20∼24세) 취업자는 고졸취업 확대 등의 영향으로 7만700명 늘었고, 30대 고용률(72.5%)도 1.3%포인트 증가했다.
앞은 더욱 불투명하다. 한국 경제가 장기 저성장의 ‘L자형 침체’에 빠져들면서 ‘고용 빙하기’가 임박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당국자는 “경기 회복세가 지연되면 전체 취업자 수 증가를 이끌고 있는 중장년층 일자리 증가 폭도 둔화될 것”이라며 “이런 상황은 청년층 일자리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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