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명 축소’를 예로 들며 국회의원 수를 대폭 줄이자고 한 것은 입법부 전체의 구조와 권한이 바뀔 정도의 담대한 제안이었다. 중앙당과 정당보조금 폐지·축소는 60여 년 정당사의 근간을 바꾸자는 것이었다. 국민참여경선을 통한 공천개혁도 수년째 각 정당이 위원회를 만들고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 연구했지만 조직 동원, 돈 경선 부작용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오던 방대한 주제다.
이런 ‘안철수표 새정치’는 곧 정치권뿐만 아니라 학계에서도 “개혁의 본질이 아니고 현실성도 떨어진다”는 반론에 부닥쳤다. 그러자 안 후보 측은 “기득권의 반발은 예상했던 일”이라며 “국민과 기성정치의 괴리를 느꼈다”고 몰아붙였다. 안 후보는 새정치를 할 사람이고 기존 정당은 기득권에 연연한다는 ‘새정치-구태정치 프레임’이었다.
안 후보가 정치혁신을 후보단일화의 조건으로 내걸며 계속 단일화 협상에 응하지 않자 기자들은 “민주당 친노(친노무현) 그룹을 해체하라는 것이냐” “이해찬 대표가 퇴진하라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조금 더 근본적이고 어떻게 하면 정치의 방법을 바꿀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길 바란다”(2일 박선숙 공동선대본부장)고 답했다. 뭔가 거창한 얘기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안 후보가 가는 곳마다 강조했던 개혁안들의 추진동력은 어느 순간 배터리가 방전됐다. 6일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 회동을 하고 두 세력 간의 본격적인 격돌이 시작된 직후부터다. 안 후보 측은 △‘안철수 양보론’ 등 뒷말·언론플레이 금지 △여론조사 응답 독려 문자 배포 금지 △조직적인 세몰이 금지 등 자잘한 개혁과제를 내놓기 시작했다. 안 후보 측은 민주당의 ‘반칙’을 비판하면서 ‘친노’를 배후로 지목하기도 했다.
급기야 이런 자잘한 과제들은 14일 안 후보 측이 단일화 협상 중단을 선언하는 대의명분이 됐다. 16일엔 안 후보 스스로 “당 혁신과제를 즉각 실천에 옮기라”며 친노의 ‘몸통’ 이해찬 대표의 퇴진안이 담긴 민주당 새정치위원회의 혁신안도 언급했다. 안 캠프 핵심 관계자들은 “새로운 정치를 하자는 것과 정반대되는 모습, 낡은 방식과 행태”(15일 송호창 선대본부장)라며 또 새정치-구태정치 프레임을 빼들었다.
그러는 동안 거대한 정치혁신안은 모두 ‘새정치공동선언’이라는 블랙홀에 들어간 뒤 온데간데없어졌다. 단일화 경쟁 앞에서 ‘안철수표 새정치’의 스케일이 급격하게 쪼그라든 것. “여론조사에 단단히 응해 달라”는 문자메시지 발송엔 발끈하면서도 정작 안 후보 자신은 민주당 의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돌렸다. 유민영 대변인의 “단일화 합의 이후 하나가 된다면 함께해야 되기 때문에”라는 설명이 변명처럼 들린다.
안 후보가 원했던 것이 ‘때마다 방점이 바뀌는 자의적인 정치개혁’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국민은 작게 쪼그라들어 버린 ‘안철수표 새정치’를 보며 그 진정성을 고민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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