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달변가(達辯家)가 아니다. 투박하고 어눌한 경상도 사투리를 듣다 보면 평범한 중년 남성을 떠올리게 된다. 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단문(短文)을 구사한다. 몇 개의 단어를 툭툭 제시하는 듯한 말투다. 하지만 핵심을 짚어낸다. 이 때문에 이 회장의 어록은 재계는 물론이고 국민 사이에서 회자되며 ‘해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는 삼성그룹 회장 취임 직후인 1987년 12월 사내 회의에서 “장가가는데 색시를 남보고 구해 달라는 것과 같다”라고 말했다. 기술자를 구해 달라는 한 삼성 계열사 관계자의 요청에 핵심 인재 채용에는 사장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그 뒤에도 그는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동반성장과 경제민주화 바람에 대기업이 지탄의 대상이 됐지만 이 회장은 일찍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1993년 5월 한국경영학회가 제정한 경영자 대상 수상 기념 강연에서 “기업은 혼자서만 잘해서는 안 되는 생명체다”라고 말했다. 2002년 5월 삼성인력개발원 금융계열사 사장단 회의에서는 “이익이 줄어드는 한이 있더라도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미래 산업과 사회의 변화를 예견하는 말들도 화제가 됐다. 1996년 1월 신년사에서는 “기업 디자인은 상품의 겉모습을 꾸미고 치장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업의 철학과 문화를 담아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휴대전화 ‘애니콜’의 품질을 높일 것을 주문하면서 “반드시 한 명당 한 대의 무선 단말기를 갖는 시대가 온다”라며 휴대전화 대중화 시대를 예견하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애플 ‘아이폰’에 밀리면서도 회사의 역량을 집중 투입해 단기간에 스마트폰 세계 1위로 올라선 원동력 중 하나는 이 같은 이 회장의 신념과 통찰력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이 회장은 말을 돌리지 않는 스타일이다. 1995년 4월 13일에는 중국 베이징(北京)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나 “우리의 정치인은 4류 수준, 관료 행정은 3류 수준, 기업은 2류 수준이다”라며 당시 김영삼 정부의 후진적 규제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삼성그룹의 자동차 사업 진출과 관련해 정부가 약속한 지원을 차일피일 미룬 데 대한 불만에서 비롯됐다는 관측이 많았지만 감히 정부를 비판할 수 없었던 당시 재계는 속 시원한 발언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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