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만의 단골 메뉴 ‘후보 단일화’ 모순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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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때마다 판 뒤흔든 단일화… 이제 국민에게 선택권 줘야

安에 쏠린 눈 23일 저녁 서울역 맞이방에서 시민들이 TV 주위에 몰려들어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의 후보 사퇴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安에 쏠린 눈 23일 저녁 서울역 맞이방에서 시민들이 TV 주위에 몰려들어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의 후보 사퇴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외신기자에게 야권의 후보단일화에 대해 설명하는데 애를 먹었다. 한참 얘기해줬는데도 잘 이해를 못하는 눈치였다.”

한 정치학 교수의 최근 경험담이다.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가 전격적으로 사퇴를 선언한 후 이 교수는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안 후보가 민주통합당 문재인 측과 여론조사 단일화 방식을 놓고 팽팽히 맞서다가 갑자기 스스로 출마를 포기하는 이 황당한 상황은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 대선구도 흔드는 ‘단풍(單風)’

1987년 직선제 부활 후 5년마다 대선 구도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이른바 ‘단풍(단일화바람)’은 이번 대선에서도 거세게 불었다. 문-안 후보의 ‘치킨게임’ 끝에 결국 안 후보가 핸들을 꺾어 그동안 안갯속이었던 대선 구도는 투명해졌지만 당분간 정치권은 안 후보의 사퇴가 대선 판도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느라 분주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문 후보나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진영 모두 안 후보 사퇴로 인한 인위적 단일화의 득실을 점치기 바쁘다. 단일화 안개는 걷혔지만 여파는 계속되는 것이다.

이제는 한국 대선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필수 메뉴’처럼 된 후보단일화 시도를 언제까지 계속 봐야 하는지에 대한 한탄과 함께 반복적인 단일화가 이제는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원칙마저도 훼손시킨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번 문-안 후보의 단일화 과정을 봐도 여러 가지 모순이 발견된다. 두 후보는 당초 단일화에 합의하면서 단일화를 새 정치, 정치 쇄신인 것처럼 주장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단일화는 직선제 도입 이후 줄곧 시도돼 온 새로울 것 없는 정치공학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문-안 후보 진영은 극적인 단일화로 승리했던 2002년 대선을 염두에 두고 단일화를 추진했다. 이에 대해선 ‘어게인 2002’라는 발상 자체가 정치의 시계를 10년 전으로 후퇴시키려는 발상 아니냐는 비판이 뒤따른다. 단일화의 성공에 대한 추억과 단일화 때문에 패배했던 아픈 기억에 여야 모두 발목이 잡혀 있는 형국이다. 단일화가 성공해 대선에서 승리한 사례는 있지만 단일화했던 후보와 세력이 함께 정권을 운영하고 임기를 끝까지 같이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성사된 단일화도 결국 잘해야 절반의 성공이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문-안 후보는 당초 “국민이 단일화를 원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왜 단일화를 해야 하는지’라는 궁금증에 대해선 “정권 교체를 하기 위해서”라고 했을 뿐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더이상의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이는 자칫 단일 후보에 대한 정통성 문제마저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단일화의 정당성도 훼손될 수 있다.

1987년 대선에서는 군사독재 종식이라는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민주화 이후 단일화 시도는 결국 1위 후보를 꺾기 위한 2, 3위 후보의 손잡기에 지나지 않았다. 정치권에서는 “만일 이번 대선 구도가 문 후보가 가장 앞서고 안 후보와 박 후보가 2위 자리를 놓고 다투는 상황이었으면 안 후보와 박 후보가 후보단일화를 추진했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대선이 단일화 게임으로 변질되면서 후보와 정책의 검증이 아닌 선거공학 중심으로 선거가 진행돼 유권자들의 올바른 선택을 방해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단일화라는 비정상적인 정치행위의 결과는 국민을 피곤하게 할 뿐만 아니라 국정의 혼란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단일화는 정당 정치마저도 무기력하게 만든다. 문 후보도 치열한 당내 경선 끝에 100만 국민과 당원이 뽑아준 후보라고 자랑해 왔지만 무소속인 안 후보의 눈치를 보며 끌려 다니는 모습을 보였다.

○ 결선 투표 도입 검토해야


대선 때마다 이런 인위적인 후보 조정 과정을 거칠 바에는 차라리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게 낫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정당학회장인 이현출 국회입법조사처 정치행정조사심의관은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면 인위적으로 단일화를 시도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에 유권자들이 충분히 살펴보고 최종 주자를 선택할 수 있게 되고 단일화가 선거과정을 지배한다는 논란이 없어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또 한 표라도 더 얻으면 이기는 현재의 단순다수득표제도에서 전체 유권자의 절반 이하의 지지를 얻고도 당선된 ‘소수파’ 대통령이 생기는 것을 막아 대통령의 국정운영 리더십도 확고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결선투표제 도입은 정치권의 합의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헌법개정과도 연계돼 있다. 일부에서는 헌법 67조 5항에 ‘대통령의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된 것을 들어 법률 개정만으로 결선투표제 도입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결선투표제 도입이 법률에 위임할 사항은 아니라는 것이 다수 헌법학자들의 견해다. 18대 국회 당시 김형오 국회의장이 만든 개헌자문위원회도 “결선투표제 도입은 개헌을 통해야 가능하다”는 잠정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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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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