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여름이 오기 전 회사를 떠난다. 30년간 몸담은 직장이다. 회사 덕분에 밥 먹고 아이들 교육도 시켰다. 그러나 은퇴 후 남은 생을 살아가자니 설렘 반, 걱정 반이다. 출근하지 않아도 될 아침은 아직은 내 것이 아닌 것 같다. 은퇴를 위한 마음의 준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22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경력컨설팅센터에서 열린 ‘찾아가는 은퇴학교’ 수강생들의 표정에는 이런 생각이 스쳐가는 듯했다. 이날 수강생들은 삼성전자 기흥, 수원사업장에서 근무한 8∼12년차 부장급 직원들이다. 모두 내년 상반기(1∼6월) 은퇴를 앞둔 이들이다. 교육프로그램은 삼성증권이 마련했다.
삼성전자의 은퇴학교 강의는 일반적인 은퇴교육과는 달리 예비 은퇴자들의 ‘정서적 준비’에 초점을 맞춘 점이 눈길을 끌었다. 은퇴한 뒤 경제적 어려움 못지않게 정서적 불안을 호소하는 퇴직자가 많은 점을 감안했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앞만 보고 살아온 직장인일수록 은퇴한 뒤 낮은 자존감과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례가 많다”며 “은퇴를 위한 마음의 훈련을 할 수 있게 돕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예비 은퇴자들의 ‘힐링’ 도우미로는 국회의원을 지낸 소설가이자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석좌교수인 김홍신 씨가 나섰다. 김 교수 외에도 시인 신달자 씨, 윤대현 서울대 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 등 전문가 8명이 멘토로 정서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김 교수는 “이 자리에 모인 분들은 그동안 너무 애타게 살아왔다”며 운을 뗀 뒤 “아무나 다닐 수 없는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치열한 경쟁을 거치며 마음은 지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쟁으로 지친 마음을 달래지 않으면 육체적 노화가 빨리 온다”며 “더이상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고 인생의 주인으로 사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안내했다.
건강한 은퇴 이후를 위해 가족관계의 재정립이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됐다. 김 교수는 비행기가 추락하는 상황에서 배우자에게 마지막 편지를 쓴다고 가정해보라고 주문했다. 그는 “전날 밤 아무리 배우자와 지지고 볶고 싸웠다 해도 마지막 편지로 ‘짜증나는 마누라’라고 쓸 사람 없다”며 “가족은 그만큼 소중한 존재이므로 일 때문에 가족에게 소홀했다면 지금부터라도 정성을 다해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무설계 강의도 색달랐다. 일반적인 은퇴 재무설계는 ‘부동산을 줄여 현금을 확보하라’는 것이 단골메뉴다. 하지만 수익률 제고를 위한 공격적인 재테크 주문이 나왔다.
김진영 삼성증권 은퇴설계연구소장은 “삼성전자 직원들의 은퇴 뒤 희망소비액은 월 400만 원”이라며 “이렇게 돈을 쓰면 지금 10억 원이 있어도 은퇴 뒤 15년이면 돈이 다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은퇴 뒤 쓸 돈을 늘리려면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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