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는 대선]<5>조지형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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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10일 03시 00분


구애 위한 말말말… 거짓말 향연 안됐으면

대선은 구애(求愛) 쟁탈전이다. 수컷은 구애를 위해 화려한 깃털과 장식깃을 펼치기도 하고 성(性)페로몬을 내뿜기도 하고 변신하기도 한다. 평소에 황갈색으로 금속광택을 내는 큰가시고기 수컷의 등은 구애 땐 청색으로, 배는 선명한 분홍색으로 변한다.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평소 무뚝뚝한 사람조차 자상한 사람으로 변신해 구애한다.

국민의 선택을 받기 위해 대선후보들은 모든 구애활동을 벌인다. 그래서 최대 권력이 걸려있는 대선은 거짓말의 향연이 되기도 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미국의 참전이 대선의 최대 이슈로 떠오르자, 우드로 윌슨은 절대로 참전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국민은 그를 믿고 대통령으로 뽑았다. 그러나 반년도 되지 않아 윌슨은 독일에 선전포고했고, 국민은 배신당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도 1940년 대선에서 똑같이 약속했다. 그러나 그때 그는 국민의 등 뒤에서 참전 준비를 하고 있었고, 결국 미국의 아들들을 세계대전의 포화 속으로 내보냈다. 그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대선후보들은 총리에게 헌법이 보장한 국무위원 임명제청권과 해임건의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겠다고 외친다. 단언하건대, 이는 거짓말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 역시 거짓말이다. 우리는 헌정시스템이 변하지 않는 한 권력자가 일하면 일할수록 제왕적 대통령제가 더 가속되는 메커니즘 속에 있기 때문이다.

대선후보들은 새 정치의 이름으로 국회의원 정수 축소, 의원 불체포특권 폐지, 의원세비 축소를 약속한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법안제출권을 갖고 있더라도, 이 약속은 독재 군주로부터 입법부를 보호하기 위해 제도화한 헌정원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입법부가 알아서 할 일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연방대법원 정수 확대 계획이 삼권분립 침해라고 신랄한 비난을 받아 좌절된 적이 있다. 이 약속이 실현되면 권력분립의 헌법정신을 와해시킨 독재의 전형으로 기록될 것이다.

대선후보들은 ‘한국형 뉴딜’이나 ‘스마트 뉴딜’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사학자들은 뉴딜이 대공황에서 미국 국민을 구원하는 데 실패했다고 입을 모아 평가한다. 미국에서 실패한 뉴딜을 환생시켜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올바른 역사인식이 없는 것은 여야 후보 모두 마찬가지다.

그래서 대통령제를 창안했던 미국인들은 선거유세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에이브러햄 링컨도 대선기간 내내 집에 머물며 이렇다할 연설을 하지 않았다. 수만 명의 지지자들이 찾아왔건만, 링컨은 지금껏 했던 연설들을 보면 거기에 자신의 입장이 모두 있다고 몇 마디 했을 뿐이다.

정보의 시대에 사는 우리가 링컨의 시대로 되돌아갈 순 없다. 문제는 거짓말하는 대선후보를 응징하는 시스템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새로운 세금은 없다’고 약속했던 조지 부시는 결국 재선에 실패해 거짓말의 대가를 치렀다. 대통령에게 책임을 지울 수 없는 우리의 헌정체계 속에서는 대선후보들의 계속되는 거짓말과 최면 언어를 막을 방도가 전혀 없다. 정말 무력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대선#조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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