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알의 신선함과 비린 맛 없는 고소한 육질. 제철 맞은 도루묵이 초겨울 식탁의 별미로 인기를 끄는 이유다. 비늘이 없는 도루묵은 담백하면서도 쫀득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특히 알이 가득 차는 11, 12월이 가장 맛이 좋을 때로 꼽힌다.
도루묵은 이름 때문에 손해를 많이 본 생선이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처럼 조선 선조가 피란 때 ‘묵’이라는 생선을 먹어 보고 무척 맛이 좋아 ‘은어’라고 이름 붙였다. 전쟁이 끝나 환궁한 뒤 그 맛이 생각나 다시 먹어보니 예전과 맛이 달랐다. 임금이 “은어 대신 도로 묵이라고 부르라”고 명을 내린 이후 지금의 이름을 얻게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 때문에 ‘말짱 도루묵’은 헛수고를 속되게 이르는 관용구가 돼 버렸다. 그러나 맛에 있어서는 ‘겨울 별미’로 꼽히는 데 손색없다.
○ 알 가득 찬 암컷 최고의 별미
동해안 항·포구마다 갓 잡아 올린 도루묵을 그물에서 떼어내 손질하는 아낙네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어판장 곳곳에는 아예 연탄불을 피워놓고 소금 뿌린 도루묵을 구워 먹는 풍경도 쉽게 눈에 띈다. 이 모습에 입안 가득 군침을 머금고 있다가 항·포구 주변 음식점을 찾아 제철 맞은 싱싱한 도루묵 요리를 맛보려는 관광객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이들 음식점에서는 찌개나 조림을 한 냄비에 보통 3만 원에 판매하고 있다.
도루묵은 찌개나 조림으로 인기가 높지만 굵은 소금을 뿌려 석쇠에 굽는 맛도 일품이다. 다른 도루묵 요리에 비해 구이는 원재료의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특히 산란을 앞두고 알이 가득 찬 암컷은 최고의 별미로 인정받는다. 이 시기의 도루묵은 살이 오를 대로 오른 데다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여느 고급 생선 못지않다.
예전에는 도루묵 요리법이 훨씬 다양했다. 구이와 조림, 찌개 외에 회를 떴고 식해도 담갔다. 꼬들꼬들 씹히는 식감이 뛰어나 뼈째 썰어 먹는 세꼬시로도 인기가 높았다. 또 토막 친 도루묵을 무와 버무려 깍두기를 담그고 김장 때 대구나 동태 대신 도루묵을 넣기도 했다.
강원 고성군 거진항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허금자 씨(41·여)는 “올해는 예년에 비해 도루묵이 많이 잡혀 회를 시키면 구이를 서비스 안주로 내줄 정도”라며 “찌개나 조림 등 싱싱한 제철 도루묵을 맛보려는 손님이 많이 찾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 강태공 쉴 새 없이 짜릿한 손맛
올해는 도루묵이 풍어다. 동해안 연안에는 산란을 위해 몰려든 도루묵 떼로 인해 ‘물 반, 고기 반’이란 말을 실감할 정도다. 지난주까지 강릉 주문진항, 속초항, 양양 수산항 등 강원도내 주요 항구 방파제에는 강태공이 몰려들어 도루묵 낚시로 쉴 새 없이 손맛을 즐겼다. 도루묵은 미끼를 쓰지 않는 일명 ‘훌치기’로 잡는다. 도루묵이 워낙 많다 보니 낚싯줄에 바늘을 여러 개 달면 한번에 2, 3마리가 달려 올라오기 예사다.
도루묵잡이에 통발(그물로 만든 어항 형태의 어구)까지 등장했다. 방파제에서 통발을 던져놓고 1시간 정도만 기다리면 100마리 이상 잡혀 올라온다. 주민 김영수 씨(46·강릉시 교동)는 “이번 주 들어 도루묵이 많이 줄었지만 지난주까지 20여 일 동안은 도루묵을 퍼 올린다고 할 정도로 엄청나게 많이 잡혔다”며 “올해처럼 도루묵 요리를 실컷 먹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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