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측이 문재인 후보 비방 글을 올렸다고 지목한 국가정보원 직원 김모 씨(28·여)가 의혹이 제기된 지 사흘 만인 13일 자신의 노트북과 데스크톱 컴퓨터를 경찰에 제출했다.
11일 오후부터 서울 강남구 역삼동 김 씨의 오피스텔 앞을 봉쇄하고 있던 민주당 관계자들은 13일 오전 11시경 철수했다. 이어 이날 오후 국정원 요원들이 김 씨를 에워싸고 어디론가 데리고 가 버렸다.
오후 3시경 국정원 대변인이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서 브리핑하던 사이 국정원 직원 4, 5명이 야구모자와 마스크를 쓴 김 씨를 에워싸고 계단으로 이동했다. 취재진 5, 6명이 급히 뒤따랐지만 국정원 직원들은 몸으로 가로막았다. 이들은 김 씨를 차에 태운 뒤 사라졌다. 문재인 후보 측 박광온 대변인은 “국정원이 진실 규명을 막기 위해 김 씨를 데려갔다”라고 비판했다.
김 씨 변호인은 이날 오후 김 씨 명의로 민주당 관계자들을 감금과 주거침입 혐의로 고소하고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한 수사도 의뢰했다. 수서경찰서 소속 경찰관 8명과 강남선거관리위원회 지도계장 등 2명은 증거품을 확보하기 위해 이날 오후 2시 13분경 김 씨의 방에 들어갔다. 경찰은 휴대전화와 이동식 저장장치를 제출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김 씨 측은 “비방 댓글을 올린 적도 없지만 컴퓨터를 확인하면 될 일이고 국정원 직원은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다만 김 씨는 “난무하는 유언비어로 인권과 명예를 침해당해 결백을 입증하고 싶다”라며 데스크톱 본체와 노트북를 제출했다. 경찰은 김 씨가 제출한 증거품을 서울지방경찰청 디지털증거분석팀으로 가져가 인터넷 접속 기록과 댓글 작성 여부 등을 집중 분석할 계획이다. 서울청 관계자는 “통상 분석에 이틀 정도 걸리지만 민감한 사안이어서 일주일 정도 걸릴 것 같다”라고 말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김 씨는 국정원 제3차장 소속 심리전단 직원으로 확인됐다. 김 씨는 이날 오전 기자들과의 통화에서 “국정원 직원으로 중립을 지키고 있으며 대선과 관련해 어떤 글도 인터넷에 남긴 적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한 원세훈 국정원장도 “댓글을 다는 등 여론조작을 한 적이 없다”라고 밝혔다. 경찰은 김 씨에게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에 대해 피고발인 신분으로 출석해 달라고 요청했다. 김 씨 변호인 강래영 변호사는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라 당장은 조사가 어렵다”라고 밝혔다.
제보 내용을 공개하라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이날도 자료를 내놓지 않은 채 공세를 이어갔다. 문 후보는 기자회견에서 “제기된 의혹이 사실이라면 민주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정말 심각한 문제”라며 “다만 아직 사실관계를 알지 못하고 객관적으로도 충분히 밝혀져 있지 않기 때문에 지금 단정하기는 어렵다”라고 했다. 문 후보 측은 추가 의혹도 제기했다.
민주당이 김 씨 집 문 앞을 거의 사흘간 가로막은 것에 대해 ‘불법 사찰’, ‘인권 유린’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집 앞을 지킨 민주당 관계자 중에는 전직 경찰 모임인 ‘경우회’ 핵심 간부인 A 씨도 포함됐다. A 씨는 경찰 재직 당시 대표적인 ‘정보통’으로 노무현 정부 때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 소속 친인척관리팀에서 일했다.
한편 국정원이 김 씨를 빼내는 과정에서 동아일보 기자가 국정원 직원의 손에 상의가 잡힌 채 그의 발에 걸려 넘어져 옷이 찢어지고 무릎에 타박상을 입었다. 채널A 카메라 기자도 부상했고 카메라는 파손됐다. 국정원 측은 “김 씨 상태가 불안정해 서둘러 이동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며 “기자 부상과 장비 파손은 배상하겠다”라고 밝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