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공감 Harmony]넥센 히어로즈 김성갑 2군감독 - 애프터스쿨 유이 부녀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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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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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로, 야구로, 사랑으로… 철저한 프로정신 ‘부전여전’

믿음과 존경을 나누는 부녀. 그러나 야구감독으로, 가수로 만나는 그들은 철저한 프로정신으로 똘똘 뭉쳐있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믿음과 존경을 나누는 부녀. 그러나 야구감독으로, 가수로 만나는 그들은 철저한 프로정신으로 똘똘 뭉쳐있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2010년 5월 29일 오후 5시 서울 목동야구장.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와 LG 트윈스의 경기를 앞두고 관중석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경기에 앞서 그룹 애프터스쿨의 유이(김유진·24)가 시구를 하기로 돼 있었고, 관중들도 기대가 큰 듯했다. 유이의 아버지 김성갑 씨(51·현 넥센 히어로즈 2군 감독)씨가 넥센 히어로즈 코치였기 때문에 더욱 관심을 끌었다. 김 코치는 딸의 시구에 방망이를 휘두르는 시타자로 나설 참이었다.

하지만 유이는 끝내 마운드에 서지 못했다. 경기장으로 향하던 길에 뜻밖의 교통사고를 당해 시구 예정 시간보다 5분 늦게 도착했던 것. 서둘러 야구장 입구로 뛰어가던 유이에게 아버지의 전화가 걸려 왔다.

“돌아가라. 늦었으니 오지 마라. 너 때문에 수많은 관중들을 기다리게 할 순 없다. 경기는 제 시간에 시작돼야 해!”

그래도 유이는 야구장으로 힘껏 달렸다. 그러나 아버지는 차갑게 외면했다. 딸은 눈물을 흘렸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지각으로 인해 시구를 못한 첫 번째 연예인’이라는 부끄러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가수 데뷔 전부터 지녔던 꿈이 허망하게 무너진 안타까움, 아버지에게 너무 큰 불효를 했다는 자책의 눈물이었다. 유이는 가수 연습생으로 힘든 날들을 보내면서도 아버지와 한 약속을 떠올리며 각오를 다지곤 했다.

“가수가 되고 유명해지면, 내가 시구를 하고 아빠가 시타를 하는 거야. 알았지?”

그날, 아버지의 팀은 역전패했다. 더더욱 딸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 아버지의 야단에도 사랑을 느끼는 딸


그날, 김 감독은 처음으로 호되게 야단을 쳤다. 딸을 키워 오면서 단 한 번도 큰 소리를 내지 않던 그였다. 사실 딸 때문에 뭔가를 걱정했던 기억도 거의 없었다.

유이는 어려서부터 학교에서는 말 잘 듣는 모범생, 집에선 말 잘 듣는 착한 딸이었다. 야구선수 아버지와 수영선수 언니, 그런 아버지와 언니를 뒷바라지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유이는 “엄마를 신경 쓰게 하면 안 된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가수 연습생 시절에도 부모와 매일 통화하면서 ‘걱정 끼쳐선 안 된다’는 생각에 항상 “잘 지낸다”고만 했다. 그러나 부모는 자식의 목소리만 들어도 안다. 아버지는 무조건 “괜찮다”는 딸이 서운하기도 했지만 스스로 알아서 제 일을 하는 딸이었기에 모른 체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 김 감독은 딸 유이를 항상 믿었다. 언니를 따라 수영을 하겠다고 했을 때도, 갑자기 춤을 배우고 싶다고 했을 때도 “네가 하고 싶은 걸 해”하며 어깨를 두드려줬다. 다만 가수가 되겠다고 했을 때 ‘안 하면 안 되겠니’라는 한두 번의 만류를 했을 뿐, 아버지에게 딸은 “제 할 일 알아서 잘하고, 자기가 선택한 일에 책임질 줄 아는 그런 아이”였다.

딸의 ‘시구 지각’에 대한 아버지의 야단은 책임감과 약속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워 줬다. ‘세대공감’ 인터뷰 자리에서 아버지는 그날을 떠올리며 “프로의 세계에선 결과가 중요하거든요. 딱 한 번 딸을 따끔하게 야단을 친 날이었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딸은 “내겐 결코 야단이 아니었어요”라고 그 순간을 되새겼다.

“그때 아버지 말씀에서 딸을 걱정하는 마음이 묻어났어요. ‘내가 얼마나 안절부절못할지, 서두르다 사고가 나면 어떡하지’ 하는 그런 아버지의 마음. 그래서 더 눈물이 났던 거예요.”

○ 아버지의 ‘프로 DNA’, 딸에게 그대로 유전



김 감독은 1995년 현역에서 은퇴한 이후 이듬해부터 지금까지 17년째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다. 지도자가 된 후 아버지는 훈련 시간에 늦은 적이 없다. 훈련도 빠지지 않았다. 작년 간농양으로 입원해 보름간 엔트리에서 빠진 것이 전부다.

아버지는 주루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면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다시 시작했다. 코치는 선수들과 운동장에서 몸으로 부대껴야 하기 때문에 운동을 거르지 않는다. 아버지는 선수들을 동생처럼 친근하게 대하지만,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정색하고 야단을 친다. 지각 선수에겐 훈련을 시키지 않는 날도 있다. 시간 약속은 곧 그 사람의 자세를 말해 주고,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은 다른 일도 잘한다고 아버지는 믿고 있다. 지금도 선수들은 훈련 시작 10분 전에 모든 준비를 끝내고 대기해야 한다.

유이는 2009년 인기 걸그룹 애프터스쿨로 데뷔한 가수이자 연기자다. 중고교 시절 수영을 했던 그는 톱스타가 된 지금도 하루 일과가 끝나면,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운동을 한다.

시간 약속도 철저하다. 매니저가 자신을 데리러 오는 시각 30분 전이면 “잘 오고 있느냐”고 확인하는 버릇이 있다. 제시간에 오지 못할 것 같으면 “먼저 가 있겠다”며 약속된 스케줄 장소로 따로 이동한다. 시간관념 없는 톱스타를 둔 매니저가 매일 발을 동동 구르며 하루 일과를 어렵게 시작하는 것과 반대되는 풍경이다.

유이는 연예계에서 예의 바르기로도 유명하다. 누구에게라도 항상 먼저 큰 소리로 인사하며, 후배들에게도 ‘군기반장’이란 오해를 받을 만큼 인사 잘하기, 약속 지키기 등 행동거지에 대해 자주 충고한다.

▼ “아빠의 자기관리, 늘 보며 자라 몸에 확실히 뱄어요” ▼


얼핏보면 오빠 동생처럼 보이는 김성갑, 유이 부녀. 굳건한 믿음이 가족화합의 열쇠라고 말한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얼핏보면 오빠 동생처럼 보이는 김성갑, 유이 부녀. 굳건한 믿음이 가족화합의 열쇠라고 말한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아버지를 닮은 딸. 아버지는 평소 딸에게 특별한 가정교육도, 잔소리도 하지 않았다. 딸은 그저 아버지의 행동을 보고 따를 뿐이었다.

유이는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는 걸 싫어하셔서 아버지는 항상 약속 시간보다 일찍 나가셨어요.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라서인지 나도 그런 행동이 습관이 됐고요…”라고 했다. 김 감독은 자신을 닮은 딸을 보며 “철저한 자기 관리는 프로페셔널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인데요, 이놈은 참 멋있지 않아요?”라며 자랑했다.

처음으로 동반 인터뷰에 나선 아버지 김성갑 감독과 딸 유이. 딸은 아버지의 자랑 앞에 쑥스러워 하면서도 눈빛으로 미소를 지었다.

○ 여자라고 가둬 두지 않는 아버지, 그 믿음에 자신감 얻는 딸


이들 부녀는 2년 전부터 함께 살고 있다. 아버지는 연예인 딸을 위해 1991년부터 살아온 인천을 떠나 서울에 집을 마련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언니와 동생. 한 집에 모여 사는 네 식구는 지금 참으로 행복하다.

“밖에서 얻은 스트레스를 결코 집에서 풀지 않는다”는 김 감독은 “가정이 화목하니 하는 일이 다 순조롭게 풀린다”며 웃는다. 유이도 “온 가족이 함께 밥 먹는 일이 이렇게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지 요즘 새삼 깨달았다”고 화답했다.

김 감독은 ‘가화만사성’의 비결을 “그냥 딸들에게 오픈마인드하는 것”이라고 했다.

“여자라고 가둬 두지 않아요.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죠. 좀 늦게 집에 들어와도 마음 쓰지 않아요. 자신의 일은 자신이 알아서 할 것이니까요. 딸이 어느 날, 어떤 남자를 데려온 데도 그 선택을 믿을 겁니다.”

유이는 그런 아버지가 감사하고 존경스럽다. “내가 어떤 일이든 겁 없이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무슨 일을 하든 믿어 주시는 아버지가 계셨기 때문이다.”

딸과 함께 산 이후 김 감독은 “요즘 표정이 달라지셨다”, “말이나 행동이 예전과 많이 다르다”는 말을 선수들로부터 자주 듣는다. 또 지인들에게는 “돈 잘 버는 딸도 있는데, 야구는 아르바이트 삼아 하는 것 아니냐”는 농담도 듣곤 한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야구는 천직이다. 다만 딸이 있어 야구를 더 신나게 할 수 있다.

아버지는 딸에게 말한다. “앞으로 인생을 살다 보면 큰 고비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그리고 충고한다. “슬럼프가 오고 우울증이 찾아와도 평소 자기 관리가 잘 돼 있다면 건강하게 잘 이겨낼 수 있다”고.

딸이 이어받았다. “나도 아버지처럼 철저한 자기 관리로 내 일을 즐기면서 오래도록 행복하게 잘 하고 싶어요. 지금처럼 앞으로도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구요….”

김원겸 스포츠동아 기자 gyumm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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