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색 잠바를 입은 소녀는 테이블에 놓인 ‘김남훈 경사 유가족’이란 표찰을 신기한 듯 만지작거렸다. 2009년 1월 서울 용산 철거민 진압 작전 중 순직한 김남훈 경사(당시 31세)의 딸 가희 양(10)이었다. 가희 양은 21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서 열린 ‘순직 경찰관 유자녀 장학증서 수여식’에 어머니 유모 씨와 함께 참석했다. 순직 경찰관의 초등학생 자녀 37명에게 장학금을 전하는 행사였다.
3년 전 김 경사 영결식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가희 양은 이날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으며 단상에 올랐다. 어머니 유 씨는 당시 유치원생인 가희 양에게 차마 비보를 전하지 못했다. 사고 후 4년 가까이 흐른 지금 가희 양은 한결 밝은 표정이었다. 김기용 경찰청장에게 장학증서를 받으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유 씨는 “아빠를 워낙 좋아했던 아이라 걱정이 컸는데 아빠가 묻힌 현충원에 자주 가다 보니 현실로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며 “아빠가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는 분이라는 걸 몸으로 실감하는 것만으로 아이에게 좋은 생일 선물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가희 양의 생일은 일주일 뒤인 28일이다.
이날 행사에는 김 경사 유가족뿐 아니라 지난해 미용실 강도를 검거하려다 흉기에 찔려 숨진 조재연 경사, 2008년 검문 중 도주 차량에 희생된 최재성 경사, 2004년 조직폭력배가 휘두른 흉기에 순직한 심재호 경위의 유가족 등 70여 명이 참석했다. 조 경사의 아들 A 군(11)은 씩씩한 표정으로 “나도 아버지처럼 용감한 경찰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참석자 중에는 순직한 아버지의 대를 이어 제복을 입은 4명의 현직 경찰관도 있었다. 2007년 근무 중 과로로 순직한 부산지방경찰청 외사과 서기태 경감의 아들 서영배 순경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경찰이라는 직업이 숙명처럼 느껴졌다”며 “저는 대학생 때 아버지를 잃었지만 유족들 가운데에는 어린아이들이 많아 이들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이 잘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순직 경찰관 유가족의 경제적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지난해부터 순직 경찰관 자녀 308명을 대상으로 대학 졸업 때까지 매년 1인당 200만∼1000만 원의 교육비를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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