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가 임기 내내 ‘금과옥조’처럼 지켜왔던 균형재정의 기조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과 충돌하며 흔들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새누리당 측에서 박 당선인의 복지공약을 감안해 당장 내년도 예산안을 다시 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과거 어느 정부건 출범 첫해에는 경기부양을 위해 느슨한 재정정책을 펴 왔다는 점에서 정부가 새누리당의 요구를 일부라도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이에 따라 현 정부가 목표로 한 균형재정 달성 시점도 상당 기간 지연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21일 “박 당선인의 복지공약을 실천하고 민생경기를 살리려면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적자예산안 편성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라며 “국채 발행한도를 늘리는 방식까지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새누리당은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 규모(342조5000억 원)보다 6조 원가량 늘리겠다는 방침을 이미 밝혔고 추경 편성도 적극 고려하고 있다.
당선인 측의 이 같은 생각은 정부의 현재 기조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정부는 재정건전성을 경제정책의 최대 과제로 삼았고 경기부양을 할 때도 이차(利差)보전, 기금·불용예산 활용 등을 통해 재정에 미치는 영향은 최소화했다. 그 결과 세계에서 재정위기를 가장 성공적으로 극복했다는 찬사를 받았고 신용평가사들로부터 국가신용등급이 올라가는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차기 정부를 이끌고 갈 박 당선인은 국가재정 관리에 있어 이보다는 유연한 생각을 갖고 있다. 그는 후보 시절 “추경 편성은 우리가 언제든지 쓸 수 있는 카드”라며 경기부양을 위해서는 융통성을 보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거기에 무상보육 등 박 당선인의 핵심공약을 감안하면 내년도 정부의 지출액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정부가 지난해 중기 재정운용계획에서 밝힌 ‘2013년 균형재정 달성’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분석이 많다.
어느 정부건 임기 첫해에는 경제가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적극적인 재정정책은 피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김대중 정부 첫해인 1998년에는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가 적자재정을 편성했고 노무현 정부 첫해인 2003년에도 경기부양을 목적으로 두 차례에 걸쳐 추경을 편성하며 3조 원의 적자 국채를 찍었다. 현 정부도 첫해인 2008년에 유가환급금 지급 등을 골자로 한 4조6000억 원 규모의 추경을 펴면서 7조4000억 원어치의 적자국채를 발행했다. 정부 출범 초기에 빚을 내 경기를 끌어올린 뒤 임기 막판에 가서야 애써 균형재정을 강조하는 패턴이 반복된 것이다.
이에 대한 재정전문가들의 의견은 갈리고 있다. 이영 한양대 교수(경제금융학부)는 “미국 경기가 조금씩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중국 등 신흥국들도 경기부양책을 준비하고 있는 만큼 한국이 적극적 재정정책을 통한 경기부양을 추진하기에 타이밍이 나쁘지 않다”며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재정 상황이 낫기 때문에 8조∼10조 원의 추가 재정 투입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 안팎에서 거론되고 있는 예산 증액의 대상 대부분이 무상급식 등 향후 지속적으로 나랏돈이 들어갈 복지 부문인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견해도 많다. 염명배 충남대 교수(경제학과·한국재정학회장)는 “당선인의 의중을 반영하기 위한 추경은 엄밀하게 따졌을 때 편법적 정책”이라며 “자칫 당선인의 생색내기용 예산이 될 수 있는 만큼 재정 당국과 국회가 꼼꼼히 따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