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수 2030세대는 이번 대선 결과를 받아들이기가 거북하다. 방송 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의 65.8%, 30대의 66.5%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했을 정도로 정권교체를 바라는 표심이 높았지만 5060세대의 결집으로 꿈이 좌절됐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23∼25일 2030세대 50명을 인터뷰해 이들이 대선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박근혜 당선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속마음을 들어봤다.
○ 뇌리에 박힌 ‘박정희 시대=독재’
2030세대 가운데는 박 당선인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보는 시각이 그 윗세대와 다른 이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박 전 대통령의 공과 과를 함께 보는 기성세대와 달리 “쿠데타로 집권해 인권을 탄압한 독재자”로 인식한다. 이는 1996년을 기점으로 변한 국사교과서의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과거 교과서는 ‘5·16군사혁명’이란 표현을 썼지만 바뀐 교과서는 ‘5·16군사정변’으로 표현해 반란으로 규정했다. 전교조의 위세가 강했던 시절에 중고교를 다닌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성균관대 4학년 신지수 씨(22·여)는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언론 자유를 억압당하던 기성세대와 달리 우린 박정희 정권의 실체에 대해 제대로 배운 세대”라며 “박 당선인이 집권하면 민주화 가치가 훼손되고 독재 정권 미화 작업이 시작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숙명여대 4학년 김민지 씨(22·여)도 “과거사 논란과 관련해 박 당선인이 사과 발언을 하고 넘어갔지만 진정성이 없고 역사관도 여전히 잘못돼 있는 것 같다”며 “박 당선인의 역사관이 논란이 되면 국정 운영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김모 씨(37)는 “박 당선인이 독재정권 당시 직접 국정에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독재자의 딸이란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며 “대선 승리는 ‘독재자 딸’의 집권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당시를 직접 경험한 5060세대보다 2030세대가 박정희 정권에 대한 반감이 상대적으로 심한 데 대해 전문가들은 다양한 분석을 내놓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학과 교수는 “6·25전쟁을 겪은 사람과 겪지 않은 사람은 가난과 북한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며 “경제적 풍요 속에 자란 2030세대가 경제적 궁핍 탈출이 우선이었던 과거의 가치를 외면한 채 인권이란 잣대만 들이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현백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독일에서도 나치의 과거 청산과 관련해 비슷한 현상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자기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시대 문제를 더 객관화해 볼 수 있다”며 “인터넷 등을 통해 감춰진 과거 정보들이 공개돼 2030세대가 박정희 정권에 대해 더 냉철히 평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 “우리 애환을 알까”라는 거리감
2030세대에게 비친 박 당선인은 ‘청와대에서 공주처럼 자란 뒤 아버지 후광으로 대통령직을 물려받은 여성’이란 이미지가 강했다. 저마다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젊은층으로서는 박 당선인의 삶에 동질감을 느끼기 어려운 게 당연하다는 분석도 많다. 중소기업 직원 김호준 씨(30)는 “현장에서 체감하는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양극화 문제는 단순히 ‘경제 민주화’ 구호만으론 해결할 수 없다”며 “특권층으로 살아온 그의 공약이 서민들에겐 공허하게 들린다”고 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박 당선인이 15년 동안 정치를 하고도 2030세대가 그를 자신들과 동떨어진 인물로 인식하게 만든 데는 본인 책임도 있다”며 “하지만 특수한 성장환경만 보고 서민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폭력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번 만들어진 이미지는 정책으로 극복할 수밖에 없다”며 “‘고소영 내각’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끝내 벗지 못한 이명박(MB) 정부를 반면교사 삼아 적극적으로 젊은층과 소통해야 한다”고 말했다.
○ “소통 제대로 할까”
일부 2030세대는 가정과 직장 등에서 부모 세대에게 느껴 온 불통 이미지를 박 당선인에게 투사하기도 했다. 대학생 공민섭 씨(26)는 “TV토론을 보면 박 당선인은 자기 생각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대통령 자리에 있으면 설득해야 할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닐 텐데 TV토론에서 보여준 말솜씨와 어휘력으로 그게 가능할지 불안하다”고 말했다. 회사원 박모 씨(37)는 “우리도 오바마처럼 명연설을 하고 유머감각도 있는 대통령을 가질 때가 됐는데 박 당선인은 여전히 기계적인 말투로 동문서답하는 모습만 보였다”고 지적했다.
주부 이소영 씨(36·여)는 “보수 성향의 아버지는 집안에서 다른 정치적 견해를 허용하지 않는다”며 “가정에서도 세대 간에 정치 소통이 안 되는데 5060세대의 몰표를 받은 박 당선인이 젊은이의 목소리를 잘 들어줄지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김학수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젊은 세대는 투표 경험이 적고 오래 지지해온 후보가 없다 보니 TV토론 때 후보의 말 한마디나 태도 하나에 더 집중하고 영향을 받는다”며 “상대 의견을 경청하고 또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모습은 대통령의 중요한 자질”이라고 말했다. 손태규 단국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는 “무조건 토론을 잘해야 좋은 지도자라고 여기는 것은 일종의 강박관념이다. 정치적 능력이 화술과 꼭 비례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 “朴 원칙-소신은 높이 평가… 산업-민주화 세력 모두 포용하는 대통령 돼달라” ▼
○ “원칙과 소신”에는 2030도 박수
2030세대 중 박 당선인 지지자들은 그가 원칙과 소신을 지켜왔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또 박 당선인이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의 대화합을 이룰 수 있는 적임자라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박 당선인을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 중에도 “정말로 노력한다면”이라는 전제하에 그 같은 기대를 표명한 사람들이 있었다.
박 당선인을 지지한 젊은이들은 “과반의 지지를 받은 만큼 앞으로도 원칙과 소신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회사원 최문규 씨(34)는 “젊은층의 의견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면 국정운용에 혼란이 생길 수 있다. 소신껏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생 신진 씨(23)는 “박 당선인이 갖고 있는 신뢰와 원칙으로 2030세대도 적극 끌어안아 사회통합을 이뤄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2030세대의 제안도 많았다. 공과대학생 조모 씨(24·여)는 “박 당선인이 이공계 출신이고, TV토론에서도 과학계를 지원해주겠다고 말한 것을 봤다”며 “계약직 연구원의 어려운 처지를 언급하며 개선하겠다고 한 약속을 꼭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대 대학원생 안용진 씨(25)는 “대선 과정에서 박정희 정권의 잘못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박 당선인이 귀를 닫는 모습을 보였는데 산업화와 민주화 두 세력을 포용하는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대 간 격차를 갈등으로만 치부하지 말고 서로 의견을 드러내놓고 소통하면 민주주의 발전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며 “박 당선인도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세력까지 포용하고 책임진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