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모든 게 어설퍼 보였다. 조악해 보이는 세트와 영상,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 그런데 배우 박정자 씨(70)가 분한 모드 할머니가 장례식장을 배경으로 처음 등장해 “혹시 땅콩 떨어진 거 못 봤수?”라고 첫 대사를 하자마자 모든 게 갑자기 자리를 잡아갔다. 배우들의 연기 균형이 잡혔고 극은 흡인력이 생겼다. 이 배우의 힘, 참 대단하다.
서울 저동 삼일로창고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19 그리고 80’(강영걸 연출)은 박정자 씨의 연극 데뷔 50년 기념공연이다. 미국 작가 콜린 히긴스의 소설 원작으로 1971년 연극보다 먼저 영화 ‘해럴드와 모드’로 제작됐다. 박 씨는 2003년 처음 본인이 직접 기획, 제작, 출연했고 2006년에는 연극과 뮤지컬로 만들어 역시 주인공 모드로 출연했다.
박 씨가 주인공 모드의 극중 나이(80세)에 더 가까워져서인지 모드의 저 대사, 저 행동이 연기인지 실제 모습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모드는 연기하기 쉬운 캐릭터가 아니다. 규정과 제도,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고 천진난만하게 보이지만 삶, 생명, 세상에 무한한 애정을 지닌 지혜로운 인물이다. 동물원에 갇힌 게 안쓰럽다고 바다표범을 바다에 풀어주고, 자동차 배기가스에 노출된 나무를 뽑아 공동묘지에 심으려 한다. 신부님 차도 거리낌 없이 훔쳐 탄다. “차야 그저 타고 다니면 그만 아닙니까? 말이나 낙타처럼 살아있는 동물이 아니잖아요.”
19세의 해럴드(조의진)는 가짜 자살시도와 장례식장 참석에만 관심을 갖는 우울한 청년이지만 장례식장에서 우연히 만난 모드의 매력에 흠뻑 빠지면서 성격도 밝아지고 급기야 모드에게 청혼할 준비를 한다.
80여 석의 공연장은 50, 60대 연령층의 관객으로 가득 찼지만 누구나 공감할 만한 작품이다. 극의 내용에 공감해 코를 훌쩍이는 관객이 여럿 눈에 띄었다. 공연장을 나서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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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내년 2월 3일까지 공연하기로 했으나 극장 사정상 31일까지로 공연기간이 줄었으니 서두르시기를. 5만 원. 02-775-7775, 02-319-8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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