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차이나 잡아라” 자원개발-공장신설 치열한 각축
‘수치 효과’로 개방 가속화… 국내 총수들 잇따라 방문
외국인 몰리며 임대료 폭등… 열악한 인프라 개선 숙제
지난해 12월 28일 미얀마 양곤(옛 랑군) 시내의 세도나호텔 건너편 공사장. 과거 정부 부처였던 공업부가 위치했던 이곳은 최근 철거작업이 한창이다. 세계 각국의 기업인과 정부 관계자들이 양곤에 모여들면서 숙박시설이 부족해지자 베트남 기업 ‘홍안’이 5성급 호텔 공사에 나선 것이다. 이곳은 시내 중심가여서 포스코건설을 비롯한 각국의 건설업체들이 치열한 수주경쟁을 벌였지만 베트남 총리가 직접 나서면서 베트남 기업이 공사를 수주했다.
같은 날 6차로 도로가 관통하는 양곤 시내 카바에 도로 주변. 3층 규모로 지어지는 건물의 공사현장에 ‘커밍 순(Coming Soon)’이란 문구와 함께 기아자동차의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기아차로부터 자동차를 구입해 현지 업체에게 공급하는 회사는 한화그룹의 종합상사인 ㈜한화 무역부문이다. 김주한 ㈜한화 양곤지사장은 “미얀마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보고 신규 사업 찾기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외 기업들의 미얀마 진출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2010년 이후 미얀마 군부가 외국인 투자 유치에 나섰을 때만 해도 해외 기업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민간정부가 들어서고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야당이 국회에 입성하는 등 실질적인 변화가 이뤄지자 기업들이 양곤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 국내 대기업들의 진출 러시
국내 대기업들의 미얀마에 대한 관심은 그룹 총수들의 방문으로 이어졌다. 2011년 6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을 시작으로 지난해에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허창수 GS그룹 회장 등이 미얀마를 찾았다. 지난해 4월 지식경제부가 미얀마 지원협의회를 구성하면서 기업체 150곳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141곳(94%)이 미얀마에 진출할 의사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병수 CJ그룹 양곤지사장은 이런 변화를 절실히 느끼고 있다. 이 지사장은 1996년 현지 법인을 설립했던 CJ가 2005년 이를 청산했을 당시 법인장이었다. 회사가 철수했지만 그는 가능성을 보고 미얀마에 남아 사업을 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7월 CJ가 다시 지사를 내면서 재입사해 미얀마 사업의 최전선에 다시 나섰다. 그는 “상반기 중에 물류 분야에서 구체적인 사업이 시작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한화와 CJ외에도 SK그룹 하나은행 신한은행 등도 직원들이 양곤에서 사업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롯데그룹은 미얀마에서 빵집을 운영하는 화교계 기업인 문베이커리와 파트너십을 맺고 올해 2월 말 양곤의 정션스웨커 백화점에 1호점 개장을 준비 중이다. 최근에는 삼성전자가 양곤지역에 휴대전화 공장을 지을 것이란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중견기업들의 진출도 잇따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분야는 봉제업. 현재도 양곤 지역 120여 개 봉제공장 중 한국 기업이 50여 개에 이를 정도로 봉제업은 한국 교민의 대표적인 사업이다.
○ 외국 기업들도 진출 경쟁
대규모 가스가 매장된 미얀마 서부 해안의 차욱퓨 지역. 차욱퓨 가스전에서 시작해 중국 윈난(雲南) 성의 국경도시인 루이리(瑞麗)를 거쳐 쿤밍(昆明)까지 연결하는 2380km의 대규모 가스관 공사가 한창이다. 중국 최대의 석유가스회사인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공사(CNPC)가 내년 5월부터 대우인터내셔널이 생산하는 가스를 중국 본토로 가져가기 위해서다. 현재 중국은 에너지 확보를 위한 대규모 투자 외에도 공항 건설을 지원하고 틸라와 경제특구의 건설에 참여했다.
중국 못지않게 일본도 마루베니와 이토추상사, 미쓰이물산 등이 미얀마에 진출해 음료 및 편의점에서부터 건설, 천연가스 확보, 자동차 분야까지 전방위에 걸쳐 사업을 하고 있다. 미국 기업인 GE도 양곤에 사무실 개설을 추진 중이고 코카콜라와 펩시는 현지 파트너를 선정해 사업을 시작했다. 고성민 KOTRA 양곤무역관 차장은 “중국의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는 가운데 미국과 일본도 잇달아 진출하면서 양곤은 글로벌 기업들의 치열한 각축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 들썩이는 부동산 시장
글로벌 기업들의 진출은 부동산 시장의 과열로 이어지고 있다. 외국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양곤 시내 카바에 파고다 거리에 위치한 골든힐타워. 이 건물 원룸의 임대료는 지난해 월 2000달러(약 213만 원)에서 올해는 2배인 4000달러까지 치솟았다. 경제성장을 거치면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중국과 베트남의 사례를 지켜본 외국인 투자자와 미얀마 내의 자산가들이 부동산 투자에 나선 영향이 크다.
그러나 해외 기업의 투자가 경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화교계 미얀마인과 결혼해 1998년부터 현지에 살고 있는 정주아 문베이커리 사장은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감만 클 뿐 기업 투자에 따른 대규모 고용은 아직 가시화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김창규 포스코 미얀마 법인장은 “미얀마의 잠재력은 크지만 정치적 리스크와 전기 도로 항만 등 낙후한 사회간접자본에 따른 위험성은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미얀마 매력과 한계
북쪽 히말라야 산맥, 동쪽 티크나무 산림, 서쪽 벵골 만, 남쪽 인도양으로 둘러싸인 미얀마는 중국과 인도를 잇는 인도차이나 반도의 핵심 지역이다. 2011년 취임한 테인 세인 대통령이 과감한 개혁·개방정책을 펼치면서 글로벌 기업들의 새로운 투자처로 각광받고 있다.
미국은 ‘아시아로의 복귀’를 내걸고 미얀마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경제 제재를 하나씩 풀고 있다. 미얀마는 23년 만인 지난해 11월 외국인투자법을 개정했다. 새로운 법은 법인세 면제기간을 3년에서 5년으로 늘리고 토지 임대 기간을 기본 50년에 20년 이상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과실송금도 허용했다. 과실송금이란 외국 기업이 현지에서 번 이익을 본국으로 보내는 것으로 외국인 투자 촉진을 위해 필요한 제도다.
하지만 현지에 진출한 대부분의 기업은 미얀마의 기업 환경에 대해 사업하기 쉽지 않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사업 환경이 개선되고 있기는 하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여전히 정부 실세를 통한 개별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풀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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