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시대-인사가 만사다]<11> 금융당국 수장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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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에 시장 출렁… 유능한 심판은 휘슬 자주 안 불어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진 직후인 2008년 11월 중순. 국내 금융계는 미국에서 날아온 금융위원장의 발언으로 발칵 뒤집혔다. 국가설명회를 위해 뉴욕을 방문 중이던 전광우 금융위원장이 ‘금융위기 극복 복안은 무엇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10여 년 전 외환위기 당시 나왔던 위기극복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 필요하면 새로운 짝짓기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 구조조정을 시사하는 듯한 전 위원장의 발언이 알려지자 은행권은 크게 술렁였다. 논란이 커지자 한승수 국무총리까지 나서 “경제부처 수장이 조율되지 않은 언급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경고했다.

규제산업의 성격이 강한 금융부문의 특성상 금융당국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금융감독원은 1600여 개 금융회사의 감독과 검사, 각종 인·허가, 유가증권 발행 등록 등의 업무를 관장한다. 금융회사 최고경영자에 대한 징계권도 있다. 금감원을 지도·감독하고 금융정책을 수립하는 곳이 금융위원회다. 이 때문에 금융위원장이나 금감원장의 말 한마디에 주가가 요동을 치고 금융시장이 얼어붙기도 한다.

3년 임기를 채운 첫 금융감독위원장(지금의 금융위원장) 겸 금감원장이던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금융당국 수장 혼자 힘으로 금융업을 번성하게 하고, 시장을 잘 돌아가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잘못된 정책을 쓰거나 불필요한 규제로 금융업을 망가뜨리고 시장을 위축시킬 수는 있다”고 말했다.

① 최우선 덕목은 금융 전문성

금융 전문가들과 역대 금융당국에서 근무한 고위 공무원들은 금융당국 수장이 갖춰야 할 첫 번째 덕목으로 전문성을 꼽았다. 금융시장이 원활히 돌아갈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풀면서 미래에 발생할 위기에도 대처하려면 금융 산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필수라는 것이다.

금융계에서 유능한 금융당국 수장으로 기억되는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 윤 전 장관은 관련 분야에서 오랜 경력을 쌓았다는 게 공통점이다. 반면 단명한 금융당국 수장들은 상대적으로 금융감독 분야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금감원 부원장보 출신인 김영재 칸서스자산운용 회장은 “민간의 창의와 자율을 감독 당국이 쫓아가기가 쉽지 않다”며 “전문성을 가진 금융당국 수장이 시장을 꿰뚫어 보고 있어야 시장을 위축시키지 않으면서 부조리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② 정치 외풍에 버티는 ‘강단’ 필요

1998년 11월 여의도 국회의사당 의원회관. 여권의 한 ‘실세’ 국회의원이 이헌재 당시 금감위원장의 손을 슬며시 쥐었다. 손 안에 든 종이쪽지를 펴보니 국장 승진 대상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 실세 의원은 구체적인 보직까지 언급했다. 이 위원장이 난색을 표하자 국회의원은 표정이 달라지더니 “협조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그때 쪽지에 이름이 적힌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승진에서 배제했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금융회사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한 권력기관이다 보니 정치권의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 윤 전 장관은 “인사 관련 민원이 많지만 어느 기업에 자금 지원이 되도록 (은행에) 영향력을 행사하라는 요구도 있다”며 “전화도 하고 사람이 직접 오기도 하는데 그걸 못 이기고 들어주면 그 다음부터는 당국의 ‘영(令)’이 서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③ 시장 통솔의 리더십 중요

금융계에서는 윤 전 장관이 금감위원장으로 재임하던 시기를 ‘금융의 태평성대’라고 평가한다. 별다른 위기 상황도, 금융계 인사를 둘러싼 잡음도, 대형 금융 관련 비리사건도 터지지 않았다. 윤 전 장관은 3년 동안 전체 은행장 회의를 2번만 했다. 취임 직후에 한 번, 퇴임하면서 한 번이 전부였다. 그는 물러날 무렵 기자들이 그 이유를 물어 보자 “유능한 심판은 휘슬을 자주 불지 않는다”고 했다.

윤 전 장관은 18년 동안 해묵은 숙제였던 생명보험회사 상장 문제를 마무리하는 성과를 냈다. 그가 금감위원장일 때 금감원 수석부원장이었던 김용환 수출입은행장은 “강한 리더십을 시장이 신뢰해 큰 잡음 없이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④ ‘사심’ 없는 공정한 인사는 기본

2001, 2002년 금감원은 대전고의 전성시대였다. 은행감독국장, 보험감독국장, 총무국장, 공보국장 등 주요 국장이 대전고 출신이었다. 대전고 출신 이근영 원장이 부임한 뒤 자신의 고교 후배들을 대거 주요 보직에 앉혔기 때문이었다. 한창 때는 국장과 수석팀장을 합쳐 대전고 출신이 20명이 넘을 때도 있었다.

금감원의 인사 파행은 금감원 내부의 문제로 끝나지 않았다. 대전고 출신 팀장들이 ‘연조’에 비해 빨리 국장으로 승진하면서 50대 초반 국장급 간부들은 갈 자리가 없어졌다. 이들은 여러 금융회사의 감사로 떠밀려 이동해 금융권 전체의 인사에 영향을 미쳤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근영 원장 시절, 보직을 못 받은 50대 초반 간부들이 금융회사 감사로 가기 시작하면서 이런 일이 관행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⑤ 과도한 지역색 피해야

2000년 여름 금융권은 바람 잘 날이 없었다. 7월 초 은행노조가 정부의 금융지주회사 도입에 반발해 은행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해 정부와 금융당국은 한동안 몸살을 앓았다.

그해 8월에 한빛은행 불법대출 사건이 터졌다. 사태를 수습해야 할 책임이 있는 금감원은 사태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오히려 금감원 국장이 이 사건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건의 중심에 섰다. 정부는 이용근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감원장을 교체했다. 재임 8개월은 역대 금융당국 수장 중 최단명이었다.

금감원의 한 임원은 “관료생활을 하면서 주요 보직을 맡지 못했던 이 위원장은 김대중(DJ) 정부가 들어서 호남 출신이라는 이유로 금융당국 수장이 됐다”며 “금융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지는 인사가 지역적 이유로 자리를 맡다 보니 위기 상황에서 중심을 잡지 못했다”고 말했다.

황진영·김상운 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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