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목사, 스님 등 종교인의 소득에 세금을 부과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 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도 ‘세원 투명성 강화’를 대선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어 새 정부 들어 종교인 과세 논의에 가속도가 붙을 개연성이 적지 않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8일 “종교인의 소득에 대해 과세하기로 방향을 잡고 있다”라며 “과세 방법과 시기에 대해서는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라는 원칙에 따라 종교인의 소득에 대해서도 과세하는 게 맞다는 ‘총론’을 세워 두고 있다. 하지만 과세 시기와 방법 등 각론은 미정이다. 종교인의 소득을 근로소득세로 할지, 기타소득세로 할지도 결론을 못 내고 있다.
○ 비과세 관행 깨려면 규정 보완해야
종교인에 대한 과세는 현행 소득세법으로도 가능하다. ‘종교인 소득에 과세하지 않는다’라는 특례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랜 기간 유지돼 온 비과세 관행을 파기할 경우 종교계의 강한 반발이 제기될 수 있는 만큼 정부는 소득세법 시행령에 명확하게 종교인 과세의 근거를 규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백운찬 재정부 세제실장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원칙만 정해져 있을 뿐 ‘과세하겠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종교인 과세는 오랜 기간 이뤄지지 않은 부분으로, 그 부분을 명확히 한다는 차원에서 규정을 보완할 필요는 있다”라고 말했다.
국내 종교시설은 9만 개, 성직자는 36만5000명, 공식 헌금 규모는 연 6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세금을 내지 않는 종교인, 성직자의 소득 수준은 대부분 면세점 이하여서 세금이 더 걷히는 규모는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천주교 성직자나 개신교의 대형 교회 목사들은 이미 소득세를 내고 있다.
종교인에 대한 과세가 현실화될 경우 늘어날 세수는 많아야 1000억∼2000억 원 정도가 될 것으로 세무 당국은 추산하고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정부는 세수 확대보다 사회 전체의 회계 투명성과 조세 형평성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종교인 과세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 종교계 “세금 납부는 찬성하지만 보완 필요”
종교계 일부의 반발이 예상되지만 입법 여건은 우호적인 편이다. 종교계 내에도 국민개세주의(국민 모두 소득에 맞게 세금을 내는 것) 원칙에 따라 종교인도 소득세를 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종교계는 시행 과정에서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담임목사는 이날 신년 간담회에서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하는 작은 교회들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불교계 최대 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과세에 반대하지 않지만 종교계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개신교계는 전국 6만여 곳의 교회 중 70∼80%는 한 해 예산이 3500만 원 미만이어서 목회자에게 사례비를 지급할 수 없는 ‘미(未)자립 교회’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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